고립과 거부 그리고 정체성. 누구도 나를 용납해 주지 않는다면 '고립'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고 누구도 나를 알지만 용납해주지 않는다면
'거부'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립과 거부를 당하지 않으려고 이미지
관리를 하고 뭔가 꾸미기 시작하며 이미 건강한 공동체는 없다.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린 혼돈에 빠지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주님의 광야 시험을 생각해 보라. 마귀는 주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주님을 시험한다. 존재의 가치를 시험하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그분의 정체성은 이미 그분이 가지셨기에 담담하다. 두려울
것이 없기에 당당하다. 이미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떄
축복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11) 우리의 정체성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는 것이기에 '척'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