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아 우라 - 청년 안중근의 꿈
박삼중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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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1905년 11월 17일, 조선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와 수십 명의 헌병을 대동하고 어전회의에 나타나

총칼로 위협하며 여덟 명의 대신에게 을사5조약에 찬성할 것을 강요한

날 나라는 힘이 없었고 위정자들은 사리사욕과 자기들 살기에만

급급했다. 우리의 아픈 현실이자 잊지 말아야 할 치욕이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한다.


안중근. 우리는 이 이름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하얼빈과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애국지사와 단지동맹이라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떤 생각을 가졌으며 어떤 영향력을 미친 인물인지에

대해 사실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이런 우리에게 저자는 일본의 전쟁

영웅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죽게 한 안중근의 유묵비(遺墨碑,

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을 새겨 놓은 비석)가 일본 센다이 다이린지라는

전통 사찰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어떤 연유에서인지 밝히려 30여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고 이 책을 출간하게 된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후 체포 될 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 대한의 독립적인 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를 해진 자이므로 한국의 군인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오. 안중근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니란 말이오'. 사실 안중근은 세상이

주목하는 죄수였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나라를 침탈하는

원흉을 죽여 준 이이고 동양의 다른 나라 역시 주적을 저격한 어쩌면

영웅이었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리고 유언을 남겼겄만 아직

그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형수의 대부였던 삼중스님(세수 82세,

법랍 66년)은 그토록 그의 유해를 찾고 싶어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2024년 9월 20일 입적했다. 스님은 여전히 아직도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 고국의 땅에 묻히길 기원하고 있을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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