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묻고 니체가 답하다
이희인 지음 / 홍익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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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고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그 시대의 이단아였으며 반항아였다.

절대 권력인 기독교를 향한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당시 유럽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충격이었고, 서구 철학의 정점이었던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에게 보내는 가차없는 힐난은 세상을 소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앞이 거의 보이지 않고 늘 병약한 모습의 젊은이로부터 말이다.

그의 병역함과 신체적 불편함은 그를 더욱 강인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니체는 그의 철학의 근간을 착하고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

되기 보다 강하고 우수한 초인(Übermensch)이 되라고 가르친다.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는 종교나 신에게 의지하는 주체성 없는

의존적 인간보다 반복되는 역사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허무에

결연히 맞서는 사람이고 덧 없는 삶이 무한히 되풀이 되더라도

자신의 굳은 의지와 참된 용기로 비극적 운명마저도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다. 위버맨쉬는 비록 오늘도 불안정하지만

꿈을 품고 앞 날을 향해 떠나는 모두를 지칭한다. 비록 한국어로

초인이라 부르지만 니체가 가리키는 바는 '물리적ㆍ물질적인 힘'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그

'창조적인 힘'으로 끊임없이 몰아치는 가혹한 삶의 고통과 허무를

매번 노래하고 춤추는 마음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즉, 삶이 가혹하다고 해서 이상적인 종교나 도덕, 이념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혹하고 불합리한 삶을 있는 그대로

마주보고 그것을 극복하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 심지어 그

고통을 기꺼이 자신의 성장을 위한 자극제로 삼으려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육사의 광야에 등장하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생각난다. 이밖에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등을 통해

신적 존재의 죽음과 영원 회귀등을 소개한다.


저자는 니체를 무작정 옹호하거나 혹은 비난하려고 하지 않는다.

니체 자신에 대해 받아 들이고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덕분에 철학이 아닌 문학작품, 연극 영화, 음악, 미술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두루 선 보이며 니체를 안다는

것과 니체의 말처럼 산다는 것 사이에서 길을 잃고, 찾으며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진정한 초인(Übermensch)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통 마저도 자신의 성장의 도구로 사용한

니체의 삶은 나약해진 이시대의 지성들에게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떄문에 우리는 니체에 열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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