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층짜리 잿빛 건물, 잉태, 탄생. 여기까지는 정상적이다. 그런데 난자가
움트고, 발육하고, 분열한다. 난자 하나에 태아 하나라는 일반적인 공식이
아닌 무더기로 싹이 생겨나고 태아가 되고 어른이 된다. 인간은 모든
인간을 공유한다는 지침과 태어나면서 이미 어떻게 성장하고 교육할지가
정해진 사회. 인간의 존엄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고 다만 만들어진
물건이며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된 세계. 모든 인간을
공유한다는 개념에 따른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기지만 어디에서도 생명에
대한 존엄과 가치 그리고 무게감은 보이지 않는 세계. 스스로 의식과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고 '소마'라는 약물에 의지해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계. 이 세계는 태어 날 때 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이라는
계급이 부여되는 아이러니한 세계이다. 어차피 기계적 생산에 의해 태어나는
것인데 여기서 계급이 나뉜다는 것은 무작위 추출인가 아니면 동일생산체계
속에 발생되는 우성과 열성의 차이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계급사회의
신분 구조는 기계화 문명에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마음이 착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