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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bsy
(
) l 2023-04-21 22:41
https://blog.aladin.co.kr/787218140/14525158
순례
- 그 높고 깊고 아득한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평점 :
순례(巡禮). 제목을 본 순간 산티아고가 생각났다. 신앙의 앵위 중
하나로 성지나 거주지를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여행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종교적 색체가 강한 단어이며 수행이나 수난 혹은 금욕이나
절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저자의 순례의 길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소용이 없으니 빨리 가고 늦게 가는 것이 별반
차이가 없다' 순례는 그렇게 흘러 가는 것이다.
순례는 걷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 올라선 채 길이 흐르는 대로 나를
가만히 밑겨두는 것이다. 아둥바둥 할 필요도, 앞질러 갈 필요도 없이
그냥 그렇게 흐르게 두는 것이고 그 위에 서는 것이다. 여기에 아주
멋진 말 하나를 덧붙인다. '혹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영영 잃어
버리더라도 주저하지 않는 것' 저자는 이것이 흐르는 길에 대한
예의이며 참 순례라고 말한다. 인생도 그런것 같다. 우리가 걷는
길도 어쩌면 순례(巡禮)일지도 모른다. 목적지를 향해 끝없이
걸어가야 하는 끊임없이 이어진 길 말이다.
깊다. 마음 깊이 전해지는 한자 한자에 울림과 여운이 있다. 연암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느꼈던 깊이와 울림을 이 책에서 다시
느낀다. 조금 외람되지만 글은 글 다워야 한다. 물론 장르나 주제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책에는 성찰도
번민도 그리고 자아를 찾기 위한 역경도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안타까움도 그대로 글 속에 녹아있다. 그래서인가. 저자의 이 말에
울컥해진다. '나는 매 순간 눈물겨웠습니다. 나의 존재가 너무 가벼워서
눈물 겨웠고, 죽을 둥 살 둥 일 벌레로 살아온 우리네 넓은 날의 초상이
안쓰러워 눈물겨웠고..'. 그렇다. 우린 그렇게 살아 온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순례의 길 위에 있다.
저자가 존재론적 소설이자 예술가 소설로 자부했던 '은교'가 단지
성적 이미지의 배설구로 전락해 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에 작가로서의
'멸망'을 느끼기도 했으며 걸핏하면 짐싸기를 좋아하고 살아 있음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가야할 길이 남아 있음을 감사한다. 저자는 자신의
폐의 1/4을 잘라내는 생존률 27%의 폐암 수술을 한 후 품위있게 죽음을
받아 들이기 위해 여전히 치열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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