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이병헌과
김윤석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이 척화파(김상헌, 김윤석분)와
주화파(최명길, 이병헌분)의 수장으로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너무 멋졌던 기억이 난다. 상대를 공략하되 도를
지키며 그러나 최선을 다해 물고 늘어지며 공략하는 모습을
보며 당시의 정치 상황이 안타까웠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나 '전하 정녕 칸의 신하가
되시겠사옵니까'라는 두 신하의 대화는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이 책에도 그렇게 기발한 변론을 하는 장면이 여러군데
나온다. 그 중에서 자공의 반론은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당신이 노나라를 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노나라는 성벽도
낮고 성을 둘러싼 연못은 좁고 얕으며 대신들도 위선적이고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임금도 어리석고 어질지
못해서 병사들과 백성들도 남과 전쟁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런
나라와 싸워봤자 아무런 득도 없습니다. 오히려 부차가 왕으로
있는 오나라를 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오나라는 성벽도
두껍고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도 넓고 깊으며, 정예 병사들이
좋은 무기로 무장하고 있으며, 대신들도 현명합니다. 이러니
강대국인 제나라로서는 오히려 오나라 정벌이 명분이있습니다.'
빈큼이 없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반론이다. 이런 멋진 말싸움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