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만나자
신소윤.유홍준.황주리 지음 / 덕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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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인사동은 이렇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가 본 귀천은 정말 작은 공간(지금 기억으론 열명정도 들어 가면 꽉 찼던)이었고 그곳 안주인(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은 뭘 그리 계속 내주시는지 우리에겐 누가봐도 인심 좋은 이모셨다. 아마도 천상병 시인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이다. 이만주(춤 비평가)시인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성골근처 언저리까지 가려다 만 인물이다. 귀천에 가끔 드나들었고 친하지는 않지만 네 분과 인사를 나누었고 지금도 가끔 인사동에 들르니 말이다. 강된장이 지금 처럼 핫해지기 전부터 자리를 지키며 강된장비빔밥을 만들어 주던 '툇마루집된장예술'은 묵은 된장의 진한 맛과 북어국의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오래전 그녀의 단골집이었다. 인사동을 말하며 조금(솥밥집)이 빠지면 서운하다. 깔끔하다. 그 옛날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맛도 실내도 재료도 깔끔해서 우리는 거기서 식사를 하고 나면 '조금도 못 남기겠어'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 기본 재료에서 우러나는 맛이 무광 토기와 어우러져 일품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그림을 어떤 여인의 손에 이끌려 동산방화랑, 관훈갤러리, 학고재, 국제갤러리, 경인미술관, 가나화랑, 금호미술관등을 참 뻔질나게 다녔던 기억이다. 이밖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필방인 구하산방(1913)이나 내 기억으론 60년이 넘은 명신당필방은 서예를 하시는 아버님을 따라 가 본 이후 몇번 심부름을 간 기억이 난다. 뿐인가 전철이 끊겨 몰래 숨어들어가 밤이슬을 피했던 승동교회 기도실이나 수운회관 벤치들은 우리 시절의 해방구요 탈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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