섯달 그믐날밤 엽총으로 자살한 노인들의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가족들의 만남과 혼란 그리고 추억들,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과 새로운 인연의 연결, 각자에겐 너무도 낯선 상황이 다가선다. 죽음 이후에 진심을 알아가는 모습이나, 죽음 이후에 새로운 면이 드러나는 점은 에쿠니의 하나의 기법인듯 자연스럽다.마치 당연하다는듯이.
86세의 시노다 간지, 80세의 시세모리 츠토무, 82세의 미야시타 치사코 세명의 노인들의 사인은 묘사되지 않고 각기 다른 세 사람의 죽음과 그 죽음을 통한 삶이라는 역린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 역린은 자신들의 삶을 통해 각기 다르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드러난다. 슬픔과 원망, 아쉬움과 원통함, 각자의 기억에 따라 느끼는 감정도 제각각이고 다르다. 그래서인지 에쿠니는 그들의 죽음에 대한 옳고 그름 보다는 떠난 이들과 남겨진 이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 입장을 통한 이야기를 담담히 만들어 간다.
이 소설 속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허무가 보였다. '아무것도 갖고 싶은 것이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무'라는 의미는 생에 있어 가장 처참한 현실이고 처절한 부재이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를 대신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 '인간 실격'의 한마디가 생각났다. '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きました。自分には、人間の生活というものが
見当つかないのです' 우리는 어쩌면 어쩔 수 없이 '인간미'와 '인간실격' 사이에서 작두를 타야 한다. 그 선택이 어떤것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