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여년전. 약 일백여년에 걸친 중국 후한말에서부터 진나라로 통일되기까지 천하
패권을 두고 펼치는 영웅호걸들의 역사를 담은 '삼국지'를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나 김원중 평역 정사 삼국지를 탐독한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삼국지는 진수(陳壽)가 쓴 정확한 사실의 역사 기록인 '정사(正史)'와 나관중(羅貫中)이
쓴 역사를 토대로 쓴 가상의 이야기인 '연의(演義)'로 나뉘는데 삼국지 연의 이후로
제갈량은 지혜의 대명사로, 관우는 관왕 혹은 관제로 불리며 '무신'의 대접을 받으며
무속신앙의 대상이 된다. 방대한 분량과 700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흡사 박경리의 토지를 연상케 한다) 하는 이 책은 수 많은 고사성어(삼고초려,
읍참마속, 고육지책, 도원결의등등)와 교훈으로 가득차 있으며 인생의 허무감과 권력의
덧없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로 위의 조조, 오의 손권, 촉의 유비 중 어느 누구도
통일 왕국을 이루지 못했다.
의외의 인물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인물에 꽂혀 다른 이는 눈에 잘 들어 오지
않았다. '제갈량'이다. 자는 공명, 호는 와룡인 그는 삼고초려와 천하삼분지계, 적벽대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만 이는 대부분 삼국지연의에만 기술되어 있을 뿐 역사서에는 별다른
활약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제갈량은 무릇 학자라면 경전을 정밀히 탐구해야 한다는 당시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탈피하여 대략(대략,큰 줄거리)을 살피는 독서법을 사용했다. 그는 무슨
책이든 책의 큰 줄거리, 즉 핵심을 파악하는데 힘쓰는 실용적 학문에 정통했다. 혼돈 그
자체였던 춘추전국시대 속에 글자 한자 한자를 탐구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고, 난세를
종식시키길 갈망했던 그에게는 고리타분한 일이었다. 그는 학문 뿐 아니라 국가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도 이전의 방식과 관습에서 벗어나 더 나은 정책을 수립하려고 애썼던
인물이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유비가 숨을 거두며 '내 자식들이 보좌할만 하면 그를 돕되,
부실하다면 그대가 스스로 황제가 되어 다스리라'고 말하자 '몸을 굽혀 모든 힘을 다하여
죽은 후에야 그만둔다'(鞠躬盡瘁 死而後已)고 말한 후출사표는 훗날 청나라의 강희제가
신조로 삼았을 정도의 충절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최대 사거리가
200m가 넘는 쇠뇌(석궁)은 활에 비해 배우기도 쉽고 명중률이 높아 전투에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천하를 능히 주무르고 호령할 만한 능력과 자질을 지녔음에도 유비를
주군으로 선택하여 끝까지 섬겼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물론 후대의 평자들은
모든것이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주군을 향한 충성과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사리사욕이 없고 스스로를 지킴에 변함이 없었던 인물이다.
철새처럼 둥지 갈아타기가 본업인양 이리저리 권력의 줄을 찾기에 급급하고 자기 배부르고,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법과 편법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요즘 정치인들에게
제갈공명은 '그림의 떡' 일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그런 인물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게임과 영화, 만화등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는 '삼국지'는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말도
하지 말라'는 '라떼는 말이야'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꼭 읽어 보면 좋은 책이다. 물론 방대한
분량과 조금 어려울 수 있는 단어들로 막힐때도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읽으면 된다. 많은 분량을 엑기스만 뽑아 단행본으로 엮어 놓은 이 책은 그냥 쉽고
편하게 읽히는 '삼국지'가 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