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 컬처 - 우리 세대가 갈망하는 새로운 내일
요하네스 하르틀 지음, 김희상 옮김 / 나무생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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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가, 우리의 갈망은 무엇인가, 우리가 소망하는 내일의

세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인류가 사고하기 시작한 이후 줄곳 있어 왔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이 이것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영원한 명제이다.

오늘날 세계는 모든것이 갈수록 더 빨라지며 사람들 역시 더 많은 것을 체험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계의 속도나 개인의 체험은 정체기를 맞게되고 이내 시들해져

버린다. 그리고 우리들은 다른 인생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어떤 인생을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모르며 그냥 산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삶에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Hartmut Rosa)의 '공명'(Resonance)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접근한다.

공명은 단순히 느낌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와의 관계로 자각하는 방식이다. 자연은

반항적이고 고집스럽고 감당하기 불가능할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대답하기에 공명을 체험하기 가장 좋은 장소이다. 서로 울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 그것이 '공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자연이라 부르며 몸, 곧 생명체의 몸통, 한마디로 구체적인 자연

(physis)이 무엇인지 중시하며 인간의 파시스가 생각할 줄 아는 재능을 가진 몸통이라 보았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생각할 줄 아는 정신(nous)과 윤리적 책임감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이 동물과 다른 결정적 차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나머지 자연과는 확연히

다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고도로 복잡한 사회성, 종교 그리고 창의성이다.

또한 그는 철학의 출발이야말로 '경탄'이라고 말했다. 너무 어려워서 놀랍고 어질어질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을 때 진정한 철학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의미 있는 지식을

존재하는 사물을 관찰하며 얻어 낸다. 물론 우리 자신도 이 세계 안에서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도 전에 이미 존재한다. 존재라는 인생 모델은 오로지 'hic et nunc'(여기,

지금)만 주목한다.

인생을 살며 오로지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없고 그 행복은 점점 축소되고 엹어 진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그레그 이스티브룩(Gragg Easterbrook)은 '모든 것은 갈수록 더 풍요롭게

누리지만 단 한가지 만큼은 예외다. 그것이 '행복'이다'라고 말한다. 아픈 감정은 누구나

알기에 아픔이나 위기에도 내면의 안정을 잃지 않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건강한 감정은 스스로가 감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인지하고 이에 알맞는 표현을

찾아내는 능력으로 판별되며 타인의 감정을 가려 읽고 적절한 관계를 맺는 능력 역시 건강한

감정의 핵심이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디지털과 트랜스 휴머니즘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고 할지라도 '의미'를 찾고자 하는 갈망은 인간의 공통된 미래이고 가치다. 의미에 대한

갈망을 늘 새롭게 일깨우며 의미의 소중함을 발견하며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무한하게 넘어설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유념하며 잊고 지냈던 에덴을 기억하며 추구하려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

건강한 세상이다.

결속과 의미와 아름다움의 문화를 통해 위협 받는 인간의 생태계가 회복되는, 우리가 살기

원하는 바로 그곳, 우리를 기다리는 도시의 문화, 저자는 이것을 '에덴컬쳐'(Eden Culture'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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