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때론 가슴벅찬 울림을 가져온다. 저자의 책을 통해 늦봄 문익환
목사님을 뵙는다. 마침 부활절을 지난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오래전 대학로의 한 교회에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그 날이 부활절이었고 우리는 거리에 있었다) '여러분이 고난
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죽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부활이어야 합니다.' 그때
모두 숨죽여 울었고 이후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갔다. 서슬 퍼렇던 시절 언제나 제일 앞에
계셨던 목사님의 그 당당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시인인 저자가 바라보는 목사님은
서정성 그득한 시를 쓰는 시인이다. 목사님의 시 '히브리서 11:1'의 일부를 옮겨 본다. '그것은,
그것은 내일을 오늘처럼 바라는 마음이오, 오늘을 내일처럼 믿는 믿음이다.' 이렇게 사셨던
목사님은 지금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그곳에 계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친필에도 '8'자는
오른쪽 위로 삐쳐 올라가는 독특한 모양으로 쓰여져 있다.
또한 나에게 '민들레 영토' 보다 '수녀'라는 시로 더 깊게 각인된 이해인 수녀님의 친필도 만난다.
클라우디아(세례명) 수녀님은 감정에 솔직하고 암울한 시대에 따뜻함과 위로를 주는 글을 썼다.
자신의 종교적 사명을 글로 대신하려는 듯 세상이 어두워지면 그의 시는 더욱 밝아지고, 세상이
소란하면 그의 글은 더욱 잠잠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시를 통해 평안과 위로를 얻는다.
그의 시 '수녀'의 한 구절을 옮겨 본다. '누구의 아내도 아니면서 누구의 엄마도 아니면서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건 여인' 수녀님은 그렇게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개신교 모태 신앙인이지만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로 신과 대결하려는 도전
정신을 가졌기에 신과의 대결 그리고 인간과의 대결이라는 두 갈래의 고독과 맞섰던 김현승
시인, 섬세하고 감성적인 어법(문체와 사물들을 대비하거나 이어주는 은유의 수법등)으로 한글
세대로서의 성과를 올렸던 '무진기행'의 김승옥등 이미 고인이 되어 볼 수 없는 문인들의
육필서명본과 사진들이 들어있다. 물론 세간의 눈이 아닌 박이도의 눈에 기억되는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