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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는 건 언제나 나였다 - 내 안의 천재를 죽이는 범인(凡人)에 대하여
기타노 유이가 지음, 민혜진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3월
평점 :
우리 안에는 천재와 수재와 범인이 있다. 이들은 같이 혹은 따로 발현되며 자신을 끌어간다.
자신 안에 공존하는 이들이 공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능력치를 최고로 끌어 올릴 수 있을까? 저자가 내놓은 답은 '공감'과
'소통'이다. 좀 진부하다.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했기에 늘상 들어 온 말을 또 듣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 결이 다르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공감과 소통의 대상이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사회 속에서 다른 이들과의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듯 자신과의 소통과 공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이 부분은 우리가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어이없는 현실이다.
천재와 수재와 범인은 커뮤니케이션의 축이 다르다. 그들이 사용하는 말의 주어를 보면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주어를 사람 중심으로 말하는 이가 많은 범인, 조직이나 규칙 등 선악으로
말할 수 있는 수재, 세계나 진리등 초월된 무언가로 말하는 천재. 이와 같이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주어가 그들의 세계관과 의식을 드러낸다. 우리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채 사용하는
말의 주어를 통해 이미 우리는 천재, 수재, 범인의 구분을 완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알라딘'을 통해 이야기하는 '공감력의 함정'은 나 역시도 몇번이고 딜레마에 빠졌던
부분이다. 배가 고파서 빵을 훔친 알라딘, 도주에 성공 한 후 빵을 먹으려는 그의 눈에 들어오는
굶주린 아이들, 그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알라딘, 여기서부터 이미 알라딘이 빵을 훔쳤다는
사실은 사라지고 불쌍한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착한 사람이 되어버려 그가 어떤 행동을
하던 관객은 옹호하고 이해하고 관용을 베푼다. 이처럼 공감력은 어느 부분을 보느냐에 따라
전체의 틀을 보는 시각이 바뀌는 것이다. 공감력이 언뜻 뿌리가 깊고 단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돛단배에 불과하다. 소위 예능에서 많이 사용하는 좋은 부분은
잘라내고 나쁜 부분은 부각해서 관객의 흥미와 시선을 끄는 '악마의 편집'이 바로 이런 감성의
축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고,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인생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때가 자기 자신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필요한 때이다. 스스로를 이해하는
사람만이 남도 이해할 수 있다. 누구보다 열렬히 자신을 믿고 지지하고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여
인생 최고의 '나'를 만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