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멋진 답변에서 시작된(어쩌면 더 일찍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던) 책의 제목 'To 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는 'empathy'와 'sympathy'를 분명하게 구분해 준다. 얼핏
비슷하고 의미상 통하는 면이 많아 보이나 분명 둘은 다르다. 먼저 대상이 다르다. 앰퍼시의
대상인 '타인'에는 지정된 조건이나 제한이 없지만 심퍼시의 대상에는 가엾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 지지나 동의를 표할 사상과 이념을 지녔거나 그러한 조직에 속한 사람, 비슷한 의견이나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제약이 붙는다. 그래서인지 엠퍼시를 '감정이입, 자기이입'으로
심퍼시를 '동정, 배려, 지지'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는 엠퍼시를 단순하게
'공감'으로 번역하는 부분에 대해 변화가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계속해서 증명되고, 인식되고, 추궁당하는 것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체험한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양식화 하는 일이
가능하다. 인간의 갖가지 특색과 상이점, 유사점, 다양성은 타인의 승인 혹은 거절을 통해
비로소 뚜렷해진다. '진정한 나', '진정한 누군가'라는 개념에서 해방되는 일. 그것은 소속된
아이덴티티가 하나라는 생각에서 해방되는 일이다. 단 하나여만 하고 하나인 것은 훌륭하다는
믿음에서 벗어날수 있다면 사람은 자기 신발 한 짝에 집착하지 읺고 타인의 신발을 신기 위해
자기 신발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아이덴티티의 감옥에 갖힌 구속자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