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흥이 많은 유나는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에스메랄다를 닮았다. 괴물 취급을 받던
'콰지모도(Quasimodo)'가 차별과 권력 때문에 희생양이 된 에스메랄다(Esmeralda)를
교수대에서 내려 사체를 끌어 안고 다시 춤을 춰 달라고 울부짖는다.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Danse, Mon Esmeralda)'. 저자는 이때 에스메랄다가 다시 일어나 춤출 것만
같았다고 하며 자신의 떨이 다시 일어나 춤춰 줄것을 기대한다. 결국 에스메랄다는 일어나
춤추지 못하며 유나 역시 일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부활의 날 무대에 선 아이를 기대한다.
긴 겨울을 지나온 저자의 고백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 인생의 풀무 불 속을 걷는 동안
하나님은 더욱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더욱 내가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다.' 신앙은 이런것 같다. 견디는 것이고 살아내는 것이다. 믿기에 견디며 살아내는 것이고
견딤은 변화를 이끌고 변화는 새로움을 가져온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고 날마다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의욕을 상실의 고통과 무기력감이 몰려와도 견디는 것이다. 견디며
그것들을 조금 조종할 수도. 조금 참을 수도, 막 울 수도 있게 된다. 저자는 이를 '울음의
기술'이라고 한다. 정혜신 박사의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슬픔은 우리를 괴물로 변하게 한다'는
말처럼 울 수 있음은 어쩌면 그나마 다행인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유나에게 용서를 구한다.
'유나야, 이 아빠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
이 책은 아픔의 상처와 헤어짐의 고통을 가진 이들이 읽었으면 한다. 그들에게 같은 아픔을
지닌 이의 진솔한 고백은 동질감과 위로를 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