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장례식
박현진 지음, 박유승 그림 / 델피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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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화가였던 아버지의 장례가 지난 몇일 후 우연히 찾아온 여행객에 의해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그림들이 봄바람이 되어 누군가의 차가운 가슴을 녹이기도 하고, 나무 그늘이

되어 고단한 누군가의 쉼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아들의 글이다. 그는 장례후 갖았던

절망과 상실이 아닌 희망과 생명을 이야기한다.

차가움. 아버지의 목숨이 다했다는 현실을 일깨워 주는 온도이자 쉽게 마주하지 못하는 낯설고

어색한 온도. 그 차이가 삶과 죽음을 가르고 우리를 뒤로 한발 물러나게 한다. 죽음이 삶의

일부분임을 알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에 우리는 너무 여리다. 그래서인지 죽음은

언제나 당혹스럽고 어색하다. 영원히 내것이 아닐것만 같지만 분명 내것이기도 한 그 죽음 앞에

우리는 언제나 발가벗은 모습으로 선다.

하샤마임(הַשָּׁמַיִם) 갤러리. 저자의 아버지인 박유승 화백의 유작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의

이름이다. 히브리어 하샤마임은 하늘과 관련된 단어이다. 천국으로 때로는 하늘로 혹은 그곳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하샤마임, 여기에 적지 않은 생각이 들어 있다. 본향을 향한 마음과 그리움,

간절함, 절박함, 벌거벗겨진채 혼자여야 하는 외로움에 대한 보상, 결국 언젠가 가게 될 그곳에

대한 기대감. 이 모든것이 이 이름에 들어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길을 걷고 있다.

언젠가 모 신문 기사 속에서 본 작품 하나를 발견했다. 이라는 작품이다. 저자의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영적체험에 대한 이야기와 이러한 체험을 빌미로 자신의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종교인들로 인한 배교를 이야기하며 수록한 이 그림은 슬프다. 색이 바래지고 퇴색되고

낡고 병들어 보이는 그 심장은 세상을 향한 사랑의 결과일진데 그 짙은 어두움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으로 한숨이 이어진다. 우리가 아는 그리스도의 심장과는

다른 '정말 인간적이고 가장 신다운 그 심장(vere Deus vere Homo)'을 마주한다. 마음 한 켠이

먹먹해진다. 그래서인지 화가의 저작노트에 '그리스도의 심정을 그리고 싶었습니다'라고 쓰여진

글귀가 오래도록 남는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영역을 마주하며 저자의 생각에 변화가 생긴다. 삶과 죽음 그 너머에 존재하는

'하샤마임'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런 생각들이 쏟아지며 제주의 한 자리에서 여전히 오늘도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화백의 마음을 전하는 '갤러리 하샤마임'이 존재한다. 제주에 가면

꼭 들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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