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절반이 영하인 핀란드에서는 7-8월경부터 겨울을 준비한다. 겨울옷을 꺼내고, 집 안을
손보고, 장작을 패서 차곡차곡 쌓아 놓고 케이크도 구워서 냉장고에 넣어 둔다. 겨울용 타이어도
준비하고 피클과 같은 저장식품도 넉넉하게 만들어 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겨울이
오면 이동하는 것이 어렵거나 불편하기에 미리미리 이곳저곳을 다닌다. 그렇게 준비한 겨울을
9월부터 3월까지 보낸다. 그러나 그 모든 능숙한 준비가 망각한 사실이 하나 있다.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은 쓸모있는 일이지만, 딱 거기까지 나아가게 할 뿐이라는 것. 겨울에는 몇 발짝
더 나아 가봤자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겨울이 그렇다.
건강검진 결과 건강에 무관심한 70대의 내장기관과 같아 경련과 염증이 반복된다는 진단을 받은
저자는(물론 이외에도 여러 문제가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진다) 회복을 위한 휴식을 결정하고
혹독한 겨울나기에 돌입한다. 이 책은 저자의 9월부터 3월까지의 겨울나기 이야기고 원제는
'wintering'이다.
윈터링은 추운 겨울을 살아내는 것이다. 계절 상의 '겨울'이든 삶의 '겨울'이든 우리가 그 겨울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는 선택할 수 있다. 어떤이는 혹독한 겨울을
겪고 또 겪기를 반복하고, 어떤이는 수월하게 통과한다. 어쨌든 겨울을 살아내는 것은 우리의
과제이고 숙명이다.
불행의 한 가운데 선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겐 낯설고 두려운 현실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유독 나에게만 집중되어 닥친다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에 잠시 책 읽기를 멈췄다.
'왜'라는 질문이 앞선다. 작가는 무너져 버리는 현실 앞에 좌절이나 포기가 아닌 '한 발 물러섬'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연이 전해주는 지혜와 치유를 경험한다. 때로는 멈춰섬이 최선일 경우가 있다.
저자는 그 최선을 선택했고 삶이 직선적이라는 생각에서 시간은 순환적이라는 현실을 자각한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일도 언젠가는 지나간 역사가 되듯이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이다.
윈터링은 순환적 삶의 'Half Time'이다. 그렇게 살아낸 저자는 힘겨움과 지루함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많은 부분은 언제나 형편없기 마련이다. 한껏 높이
비상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아침에 일어나기 조차 버거운 순간들도 있다. 둘 다 정상이다. 사실
둘 다 어느정도 필요하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지극히 정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