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 저장된 신맛의 기억은 '신지'라고 불리는 '신김치'에서 비롯되었다. 유산균에 의해
배추가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긴 유기산과 젓산의 신미가 점점 강해지면서 김치가 시어져서
생기는 '신지'는 우리가 기억하는 신맛의 시작일 것이다. 선인들은 신김치를 다른 음식에
적절히 가미하면서 신맛으로 음식 맛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삭탁을 만들어 왔다. 시어
꼬부라진 '신김치'로 신맛에 익숙해졌고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식초를 음식에 많이
사용한 것도 신맛을 조율하는 실력을 향상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정조지'는 조미료로서의 매력이 한껏 담긴 신맛을 음미할 수 있는 다양한 식초 음식을 소개한다.
사실 이렇게 다양하고 많을 줄은 몰랐다. 저자들은 식초가 가진 짠맛, 단맛, 지방의 느끼한 맛,
쓴맛을 조화시키는 섬세한 능력을 한식에 다양한 방법으로 접목하는 것이 한식을 혁신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순나물이라고도 불리는 순채는 산에는 송이, 밭에는 인삼이라면 물에는 순채를 제일로 꼽았으며
진상을 하던 식물이다. 수온 변화가 적은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는데 깨끗한 물 위로 잎을 올리고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므로 기르기 까다로운 수생식물이다. 특별히 조선의 문인들은 순채의
독특한 맛을 시로 남겼는데 서거정(徐居正, 세종부터 성종까지 문병을 장악했던 인물)은 '혹은
날로 먹고 혹은 국을 끓여서 간을 잘 맞추니 초계가 향기롭네. 금제 죽순을 논해서 무엇하리.
특이한 맛이 오후청(산해진미를 넣고 끓인 고대 중국의 음식)을 안 부러워하네'라며 순채의
무색무취한 맛에서 맛을 느낀 기쁨을 노래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순채가 숙취 제거와 청혈
작용에 효과가 있다고 소개한다. 아쉽게도 지금은 멸종 위기 야생 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조지에 소개하는 대부분의 재료들은 이와 같이 멸종 위기 식물이거나 아니면 이미 멸종되어
더이상 우리가 마주 할 수 없다.
반가운 이름도 하나 만났다. 서유구의 형수인 '빙허각 이씨'다. 풍운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결국
'의리'를 지킨 멋진 여성인 빙허각 이씨가 붕어찜을 만들었다고 전하며 그 요리법을 적어 놓았다.
붕어가 살이 단단하여 단맛을 내는 생선이긴 하지만 비린내와 흙냄새로 조리가 까다롭고 억센
뼈가 살 속에 박혀있어 먹기가 불편한 음식인 붕어찜, 특이하게도 빙허각 이씨는 붕어의 입에
몹시 떫고 시큼한 백반을 넣는다. 살이 부드러운 생선인 붕어의 단백질을 수축, 응고시키는 성질의
백반은 붕어의 살을 탱글탱글하게 하며 입에다 백반을 넣으면 백반의 떫은 맛도 잡아주는 효능이
있다. 백반은 냄새가 없고 물에 녹으면 산성으로 변하기에 붕어의 몸 속에 많은 기생충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아마도 셰프 서유구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빙허각 이씨의 생과
붕어찜은 좀 안어울리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