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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블로어 - 세상을 바꾼 위대한 목소리
수잔 파울러 지음, 김승진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10월
평점 :
조직의 비밀을 조직 밖에 알린 이들은 필연적으로 수난을 겪게 된다. 동료들의 증오심,
배신자라는 오명, 사법당국의 조사, 법정이나 청문회에서의 증언, 심지어 투옥까지 이들이
겪어야 하는 고초는 너무나 크다. 그러나 휘슬블로어가 필요하다는 점, 정확히 말하면
휘슬블로어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현대사회에서
국가 기구나 기업 조직이 관료화 비대화 될수록 정보 통제는 많아진다. 정보 독점이 극심한
상황에서 내부자의 제보가 없으면 사실상 국가, 기업에 대한 사회적 감시는 불가능하다. 정치
무관심, 윤리 불감증 등 우민화(어떤 영화에서는 '개돼지'라는 표현을 썼다)된 대중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관료화된 사회의 균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휘슬블로어들이다.
휘슬블로어(whistle blower)는 부정행위를 봐주지 않고 호루라기를 불어 지적한다는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내부고발자'를 지칭한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딥 스로트(Deep Throat)'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 엔론과 월드컴의 회계부정을 폭로한 샤론 와킨스 부사장과
신시아 쿠퍼 감사, 이탈리아 부패추방운동인 '마니풀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를 일으킨 한
중소기업인이 내부고발자의 대표 사례이다. 이 책은 우버의 속살과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휘슬블로어 수잔 파울러의 글이다.
저자는 '현대 미국 서부 지역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깡촌'에서 자랐다. 그곳은 사회의 주변부에서
밀려난 이들과 무언가 때문에 숨으러 온 사람들이 주요 거주민이고 상점다운 상점은 30분, 병원은
한 시간 이상을 가야 존재하는 그런 곳이다. 정규 교육의 혜택은 당연히 못 받았고 홈 스쿨링으로
아이비리그에 들어갔지만 세상은 그에게 '백인 쓰레기'라는 사회적 계급의 낙인을 찍는다. 모두가
선망하는 실리콘 밸리에 입성했지만 따라 다니는 낙인은 여전했고 거기에 남성 중심의 폐쇄적이고
왜곡된 조직 문화는 그녀를 성폭력 피해자로 만든다. 그리고 어느 누구하나 진심이 없다. 다들
자기만을 생각한다.
'내부고발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리만치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가 없으면
그 일(?)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이 기업이나 국가를 상대로 침묵을 깬다는 것은
'정의'라는 말을 쉽게 뱉을 수는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 처럼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국가 최고 권력자를 내부 고발한 워터 게이트의 '딥 스로트'는 휘슬블로어가 회자되는 모든 순간에
등장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 조금씩 말을 들어 준다. 아무리 성폭력에 대해, 성폭행에 대해, 성차별에
대해, 인권 유린에 대해 고발하고 부르짖어도 묵살하고 무시하고 지나쳐 버리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조금씩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직 갈길은 멀다. 그래도 수잔과 같은 이들이, 딥 스트로(마크
벨트 부국장)같은 이들이 먼저 길을 갔다. 침묵하는 비겁함 보다 당당히 맞서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수잔 파울러 역시 포기하고 싶었고 손을 놓고 싶었다. 그러나 그 길에서 결코 내려서지는
않았고 '우버'라는 거대 조직의 작은 변화를 시작하게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이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는 어떤가. 성에 대한 차별에
대해 그나마 시야가 열려 있는 미국 사회와 거대 조직이 이럴진데 우리의 형편은 결코 낫지는 않을
것이다. 불과 얼마전에 있었던 어떤 인사의 성추행 사건에서도 우리의 민낯은 여실히 드러난다.
그래서인가. 책의 맨 앞에 있는 '나의 딸에게'라는 글이 더욱 눈에 밟힌다.
'네가 커서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무렵이면 여기에 묘사된 세상이 완전히 낯설고 이상해
보이길 바란다. 너와 너희 시대 여성들이 살아갈 세상은 괴롭힘, 차별, 보복의 두려움이 없이 꿈을
쫒을 수 있는 세상이길 바란다. 꿈이 충분히 크지 않은 것 말고는 네가 두려워 해야 할 일이 없는
세상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