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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살아있다 - 찾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시인의 모든 것
민윤기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하늘, 바람, 별, 시를 싣고 물길 따라 흘러 보냈을 것도 같은, 그 어린 아이 동주(東柱)가 띄운
배는 수많은 배가 되어 지금 우주 한가운데 은하가 되어 흐르고 있을 것 같은, 그렇게 머릿속에
박혀들기 때문이다.' 이근배 선생이 쓴 머릿말 중 일부이다. 중국이 그의 시비에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라고 쓰는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자신의 국민으로 삼고 싶어 했던
동주. 그에 대한 절절한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이 책에 실려 있다. 언젠가 국문학과 교수님으로
부터 '서시는 없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서시'가 아니라 그의 육필 원고엔
분명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되어 있다. 동주는 우리에게 '하늘'이고, '바람'이며, '별'이고,
'시' 그 자체이다. 스물여덟의 짧은 생을 살다 간 그이지만 그는 분명 우리에게 조국에 대해,
사랑에 대해, 간절함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일본도 탐내고, 중국도 탐냈던 그이지만
1945년 이른 봄 생을 마감한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꾸 사용하여
가치가 많이 떨어 졌지만 우리는 '윤동주 보유국'이다. 아쉽게도 엮은이의 말처럼 주변국이
그렇게 탐내는 동주를 점점 잊어버리고 있는 즈음 이 책은 그를 '발견하고', '지키고', '기리는'
일을 더 '깊이', '정확하게' 계속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준다.
'동주'는 '순이'와 '어머니'를 통해 자신의 마음 속에 가득차 있던 고독감을 사랑에 대한 갈구 또는
상상을 통해 채워 나가려 했다. 그가 사랑했던 대상들은 모두가 작고 어리고 연약한 것들이었다.
그 대상이 자기가 되기도 하고, 동포가 되기도 하고, 작은 짐승, 작은 들꽃이 되기도 한다. 윤동주
시의 빼어난 장점은 강렬한 저항성에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소박한 연민, 가냘픈 그리움 등에
있다. 특별히 그의 시 '사랑의 전당', '소년', '눈 오는 지도'에 등장하는 '순이'가 그렇다. 그는
순이의 심상을 통해서 모든 우리나라 여성 또는 그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님', 모든
이웃과 동포를 함축적으로 상상하려했다. '소년'에 등장하는 '사랑스런 슬픈 얼굴'에서 순이의
슬픈 얼굴을 바라보는 시인의 연민은 유약한 감상주의가 갖는 한계성을 뛰어 넘어 상징의
'구체화 작업'을 완성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랑의 전당'에서는 '성스럽고 뜨거운 불꽃'이
꺼질까 두려워 서둘러 헤어지려 하는 순수함이 엿보인다. 순수한 마음을 읽은 뒤의 사랑,
어린아이의 마음이 아닌 어른의 추한 이해타산이 섞인 사랑을 그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눈 오는 지도'에서 순이가 떠난다. 잃어 버린 역사처럼 님이 떠나간다. 눈과 꽃은 또한 재생의
심상과 화해의 공간에서 맞이하는 자연 순환의 상징을 통해서 현실적인 모순을 융통성 있게
향수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시를 함부로 써서 원고지 위에서 고치는 일이 별로 없고,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몇 주일,
몇 달 동안을 마음 속에서 고민하다 한 번 종이 위에 옮기면 그것으로 완성이 되는 동주(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 중에서)를 정지용은 이렇게 평한다. '청년 윤동주는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 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이 없이!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런 것이다.'
제 조국을 잃은 아픈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스스로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를 바랐던 한 시인.
그는 비록 시대의 아픔 속에 홀연히 떠나갔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의
벗이자 후배인 정병욱이 말하는 '별 헤는 밤'의 마지막 넉 줄 처럼.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