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서는 완벽한 정의가 이루어 집니다. P51
날이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용기있게 빌라도에게 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P238
지금 우리는 '신앙의 고비'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다행히 동굴은 아니다. 본질이 희미해지고
본질이 왜곡되고 본질이 뒤바뀌는 혼돈 앞에 우리의 신앙은 거의 무방비 상태다. 동굴이
길어서인지 의지가 약해서인지 아니면 우리가 잘하는 말인 믿음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우린 그 터널 안에 있다. 이런 우리에게 저자는 사복음서를 중심으로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다른 쪽으로 빠지지도 않고 중심이 흔들리지도 않고 그냥 예수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Vere Dus Vere Homo'. 칼게돈 신조(주후 451년, Difinition of faith Chalcedon). 예수에 대해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다. 저자는 이 책의 신학적 좌표를 여기에서 찾는다. 초월적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고유성을 드러내며 그 고유성인 '거룩'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에 다가간다. 그러면서
현대 신학의 오류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의해 오염된 복음주의와
인본주의적 신앙과 타협과 포기를 밥먹듯이 하는 변질된 신학에 대해 그가 하는 지적은 좀 아프다.
비록 그가 겸손함으로 자신의 신학적 미완성과 부족함을 이야기하지만 이 책을 읽는 목회자들 중
이만한 소양을 가진이가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깊다. 특히나 헤롯 대왕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등장시키는 분열 왕국부터의 간략사는 저자의 직업이 판결을 내려야 하는
입장이어서인지 간결하고 일목요연하다. 짧지 않은 시간의 흐름을 정리하고 핵심을 끄집어 내
쉽게 설명한다. 고대근동사 책을 꺼내 다시 읽으며 곧 망하게 될 예루살렘 성을 보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통곡하던 예수를 발견하는 저자가 당혹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