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때론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영화 속 대사 한 줄에 가슴 찡한 감동과 벅차오르는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에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기도 하며, 오지 않을
것 같은 미래에 한 줄기 소망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17편의 영화와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진짜 나는 무엇이며 나를
찾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는 모아나, 상상속의 그것을 현실로 표현해 낸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일본 에니메이션의 진수를 보여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잔잔한 풍경과 그 속에
어우러진 사람들 그리고 맛난 요리가 돋보이는 리틀 포레스트, 어떻게 살것인가와 왜 사느냐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겨 준 안나 카레리나등이 들어 있다.
영화 '모아나'를 보면서 모아나의 할머니와 같은 인생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가장 원하는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며 곁에서 온전히
모아나의 결정을 지지하고 어떠한 비난도 하지 않는 그런 '어른'말이다. 이렇게 자유롭고 유연한
생각은 그의 마음에서 나온다. 모나지 읺고 수용하고 포용하며 조금 더 남을 이해하는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관용과 너그러움'은 그후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그런
멘토를 둔 모아나는 '나는 모투누이의 모아나야'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모아나야'라고 말하며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모아나의 할머니의 이 말은 여전히 기억된다. '세상이 혹독해도,
여행이 고통스러워도, 상처는 아물며 널 가꿔 줄 뿐이란다'. 우리는 무엇을 하거나 하지 읺아도,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내지 않아도, 우리는 있는 그대로 온전히 귀하고 소중하다.
대화도 별로 없고 진행은 평화롭고 잔잔하기만 해서 자칫 지루할뻔 한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은
오아시스다. 여름을 시작으로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을 영상에 담은 이 영화는 일본에서 두 번을
한국에 와서 세 번을 보았다. 리틀 포레스트. 너무 맛있어 보이는 감자빵을 만들어 보다 몇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이치코가 결국 자신만의 감자빵 레시피를 완성한 것처럼 조금 덜 넣고 조금
더 넣고의 반복을 통해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고는 어찌나 행복해 했는지 모른다. 맛은 말할 수
없다. 실패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일들이 사실은 성장의 공간이었고 부쩍 자람의 시간인 것이다.
푸성귀 볶음은 결국 만들기를 그만뒀다. 이 영화를 몇번이고 다시 보게 된것은 이 문장 때문이다.
'열심히 사는 건 좋아 보이는데 한편으론 제일 중요한 무언가를 회피하고 그 사실을 자신에게
조차 감추기 위해 '열심히'하는게 아닌가 싶어? 그냥 도망치는거 아니야?' 그때 내가 그랬다.
그래서 이 영화를 몇번을 보았다.
우선은 그대로 보아야 한다. 도망치거나 부딪치는건 그 다음이다. 두려움과 맞서는것은 그것을
바라 볼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래야 인생이라는 도화지 위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 나갈 수
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자유다. 최소한 영화를 보는 그 시간만은 몰입하게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 꽤 신중하게 영화를 고르는 편이다. 그 자유는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자주 혼자 영화를 본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온전한 자유를 누린다.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