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 예술과 철학의 질문들
백민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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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강의 중에 들었던 '한강변의 타살'을 이 책에서 만났다. 당시 서슬 퍼런 군부시절,

용기있는(당시엔 만용이라 했다) 이들에 의해 펼쳐진 한바탕 어울림은 예술의 이름을 팔아

사기나 치고, 예술을 팔아 축제나 하고, 예술 한다면서 시대의 유행이나 쫒는 예술가들을 향한

신랄한 낙인이기도 했다. 그들은 의도가 순수하지 못하고 독창성이 없는 비예술은 불태워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고 당시 한국의 구태의연한 기성 문화 세력을 매장하고 타살하고자 하는

문화 비판 행위였다. 무려 1968년의 일이다. 물론 예술과 비예술을 가름하는 판단은 쉽지 않다.

소비자가 한 사람이 아닐뿐더러, 소비자의 판단에 작품을 만든 작가가 생산자로서 다시

개입하기에 사회의 어느 누구도 예술의 심판, 판관의 권위를 온전히 갖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현명한 소비자가 되고 싶어 한다.

예술은 사유하게 한다. 사유를 촉발시키는 힘까지 예술의 일부이다. 사유한다는 것은 의식적

행위이다. 무언가를 의식하는 행동이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행동이며 무언가에 다가가는 행동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유를 고통스러워한다. 대부분의 사유는 언어를 통해 가능하다. 언어가 없는 예술은

그래서 더욱 사유하기 어렵다. 작가의 의도와 생각에 대해 끝없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조금

아주 조금 흔적을 따라갈 수 있기에 언어가 배제된 예술을 사유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예술은

사유 행위다. 언어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종류의 표현 방식이 동원되는 예술은 사유의 총체이다. 결국

자기 자신으로의 사유를 추구하게 되는 인간은 삶의 대부분의 순간을 사유하며 지낸다. 본인이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말이다.

비운의 재즈 아티스트 쳇 베이커의 은 우물쭈물 혼자 말하는 듯한 창법이 잔잔하게 가슴을 울린다.

부단히도 사회 규범을 어긋나려 했던 베이커가 스물셋에 녹음한 곡으로 재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곡이자 유명한 곡이기도 하다. 베이커가 대표하는 장르는 쿨 재즈로 쿨 재즈는 사색적이고 지적인

사운드의 엘리트 에술에 가까운 장르다. 여기서 쿨(cool)은 '완벽한 음조를 구사하며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명확하고 말끔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사운드를 말함과 동시에

삶의 방식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여타의 재즈 아티스트처럼 마약 중독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은 빌리 홀리데이의 '하루를 백일처럼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려

애쓴다. 모든 감정을 느껴보려 애쓰고, 온갖 음식(여기에는 마약류도 포함)을 먹고, 안 다니는데 없이

다닌다.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는 말처럼 치열하게 살며 자신을 죽여간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간다.

예술가들은 '아우라'를 가진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아우라란 '누군가 나 아닌 다른 사람만이

볼 수 있고, 또 그들이 원하는 만큼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우라란 특정한 사람이나 물건을

둘러싸고 있는 신비스러운 어떤 분위기다. 예술가로서 쌓아온 명성, 독특한 작품 경향이나 미학,

시장에서 팔리는 가격 수준, 매력적인 일화들, 떠도는 루머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작품의 아우라를

형성한다. 일한 만큼 돈을 받길 바라는 것은 천박한 일이 아니다. 예술가는 다른 직업을 갖지 않더라도

작품을 창작, 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이미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다. 이는 자신의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 책은 영화와 소설, 음악, 미술을 망라한다. 그리고 그 예술은 이 세상에 속해 있다. 그 속에서는 모든게

생산되고, 모든게 수용되고, 모든게 팔린다. 이 책은 그런 예술의 본질을 찾으며 알아감에 초점을 둔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서 이미 오십여년전 사망선고와 추방을 명했던 그들이 꿈꾼 그 세상은 결국

열리지 않고 더 많이 변질되고 파생되어 갔다. 언젠가 기준도 경계도 금기도 없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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