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명품을 가지려고 한다. 그리고 그 명품은 자신을 드러내는 가치와 이유가 된다. 물론
자기 만족이다. 저자는 자신의 여행의 묘미를 새로움과 품격으로 꼽는다. 남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며 동일한 길을 가게 되더라도 남이 갖지 않는 새로운 생각으로 사물에 접근하며 그렇게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들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움직이고
움직이는 것, 그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라 저자의 연륜과 인격,
해박한 지식과 깊은 사우가 어우러진 여행 명상록이다. 여행은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행복이며 창조행위다.
내몽골 고비사막의 모습은 여전히 황량하고 광활하다. 비행기 조그만 창 문 밖으로 끝도 없이
펼쳐지는 황토빛 사막은 그 자체로 경의를 느끼게 한다. 비행 고도도 높지 읺아 그곳을 지날 때면
아래로 펼쳐지는 동네의 모습도 볼 수 있고 산맥과 사막이 어우러져 펼치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터키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이자 미인이 많기로 소문난 이즈미르(실제로 미인이 정말
많고 성경에는 '서머나'로 알려졌다)에서 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에페스(Efes)는 고대 이오니아와
그리스 로마 세계의 예술과 과학, 학문이 꽃을 피웠던 곳이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가 태어난 곳이기도 한 이곳은 그가 생전에 남긴 말들이 파피루스에 남겨진채
발견되기도 한 곳으로 '태양은 매일 아침 새로우며 언제나 움직인다'와 '삶이란 장난치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철학적 명언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베르가몬 도서관과 더불어 고대 세계 3대 도서관에 속하는 켈수스 도서관이 폐허가 된 채 남아
있다. 로마 아시아 집정관인 켈수스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 도서관 정면에는 지혜, 운명,
학문, 미덕을 상징하는 여성 동상이 조각되어 있다. 잠시 생각에 빠졌다. 거대한 건축물 안을
가득채운 파피루스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되게 하는 광경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철학적
향유를 즐기던 그때의 학자들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저자는 욕심이 많다. 어느새 오스만 제국을 건드린다.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년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대 제국을 건설했던 오스만 제국에 대해 서양이 가지는
편견이 아닌 이벙인이 바라보는 객관성을 가지고 접근한다. 그래서인지 신선하다. 서양이 공격하면
정복이나 위대한 승리이지만 동양(훈족, 몽골족, 오스만등)이 공격하면 찬탈이나 파괴가 되어야
하는 세계사 교과서 저술 방식에 정면으로 다가간다. 우리가 오스만 튀르크라고 부르는 오스만
제국을 정작 터키 인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오스만 제국은 단지 튀르크인들만의 나라가
아니라 다양성과 공존, 관용의 정신이 살아있는 국제성을 띤 제국이었기에 그들을 자부심을 가지고
'오스만 제국'이라고 부른다. 또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에서 칼이
폭력적 포교 도구가 아닌 신의 말씀을 생명처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비틀린 역사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별히 다른 민족이나 종교인 가운데 우수한 인재를 뽑는 청년
징병제인 '데브시르메'(Devshirme)는 오스만 제국의 관용성과 국제성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오스만 제국은 점령지 내지 통치지역의 주민들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기아와 빈곤을 다독여 주었다. 거의 대부분의 통치 기간 동안 보여준 관용적인 통치는 다민족,
다종교 정치 체재의 모범적인 통치 스타일로 꼽힌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결국 자신의
길이 되고 의지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의 어딘가에 존재한다. 머물것인지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함께. 저자는 오늘도 그 길 한 가운데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