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의 역사 - 홀연히 사라진 4천 년 역사의 위대한 문명도시를 다시 만나다 더숲히스토리
카렌 라드너 지음, 서경의 옮김, 유흥태 감수 / 더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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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는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정복한 후, 유대인들을 강제로 바빌론으로

이주시켜 살게 하는 이른바 '바빌론 유수'혹은 '바빌론 유폐'라고 하는 조치를 감행한다. 구약성경

시편 137편은 이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며 바빌론에 강제 이주당한 유대인들의 고통과 슬픔을

이야기한다.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이 시편 137편의 내용을 자신의 시로 다시

옮겨 놓은 것이 '바빌론 강가에 앉아 우리는 울었네(By the rivers of Babylon we sat down and

wept)이다. 이 시를 보니 엠(Boney M)이 '바빌론 강가에서'(River of Babylon, 1978)라는 곡으로

노래했으며 파울로 코엘류(Paulo Coelho)의 소설 '피에드로 강가에 앉아 나는 울었네'의 제목도

여기서 인용되었다. 성경에 무자비한 침탈자로 주로 묘사되며 역사학자들에게는 숨겨진 미지의

대륙으로 알려진 바빌론에 대해 소개하는 이 책은 무척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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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은 생소하다. 그리고 바빌론은 익숙하다. 어쩌면 이 표현이 가장 적합할지 모른다. 그만큼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 바빌론이다. 지역적으로 '여기가 바빌론이다'라고 말할 근거나 자료도 별로

없고 역사적인 인물도 생소하고 그럼에도 고대 근동지방의 패주였던 바빌론은 '세 강이 만나는 지역'에

위치한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디얄라강이 만나는 비옥한 농경지를 끼고 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이며 전략적 요충지에 있었다. 특이한 것은 바빌론의 왕권은 세습제가 아닌 마르두크(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마르둑' 혹은 '벨'과 같다)의 대리인이라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차지할 수 있었다. 바빌론 도시 문명을 정점에 올려 놓은 사람은 네부카드네자르2세

(느부갓네살2세)였고 그는 이미 기원전 7세기 경에 바빌론을 인구 18만이 거주하는 거대 도시로

만들었으며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바벨탑 모양의 지구라트와 공중정원, 거대한 문과 건축물을 만들어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자연적, 지리적 혜택이 있는 지역에 위치한 탓에 전쟁으로 지속적으로

다양한 종족이 유입되어 다양성을 갖췄고 바빌론은 이 다양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정치, 종교, 문화를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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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은 에산길라 신전에 거하는 마르두크 신의 도시였다. 신상은 신성한 신전 작업장에서 정결의식을

거친 장인들이 의해 제작되었고 '입 열기 의식'을 통해 지각 있는 존재로 깨어났다. 사제들이 매일 수행하는

제례를 통해 신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었기에 사제들은 신을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즐겁게 하는 일을

했으며 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신중하고 정확한 과정을 통해 신을 섬겼고 신은 도시와 백성을 보호했다.

슈트루크나훈테 2세가 기원전 1158년 처음으로 바빌론은 공격한 이 후 수십 년 동안 여러차례 엘람의

침입이 있었고 마르두크 신전을 약탈해 조각상을 가져가는 일도 벌어진다. 이같이 다사다난한 시기에

마르두크의 역할은 재 해석 되었고 바빌론 왕과의 관계가 점차 단순히 '주인'(벨)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독보적 통치자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왕권은 타고난 권리가 아닌 신이 바빌론 왕으로 인정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왕국이 점차 분권화되고 분열되어 감에 따라 왕권의 영향력은

유지되면서도 절대적인 권위는 약화되어 갔고 이 시기에 마르두크를 최고의 신으로 추앙하는 서사시 가

쓰여졌다. 이 시는 아카드어로 쓰여진 긴 문장으로 '아키투'(바빌론 신년 축제, 일년에 3월 춘분과 9월

추분에 12일 동안 치러짐) 동안 바빌론의 마르두크 신전 에산길라에서 낭송 됐다. 바빌론 주민의 입장에서,

특히 실질적으로 마르두크가 선택한 승자를 확정짓는 에산길라 제사장들의 관점에서 보면 왕을 뽑는 것은

도박과 같았다. 때문에 기원전 2천년대 후기에 이미 왕과 신전 공동체 간의 잠재적 갈등은 심화되었고

후일 왕국 붕괴의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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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부분이 특이하고 생소한 것들이지만 '내장점'은 정말 낯선 광경이다. 신과의 소통을 믿고 신에게

양을 제물로 바치는 사회라는 문화적 맥락으로 보거나 신을 대하는 바빌론의 원칙이 '네가 주니까 내가

준다'(라틴어 do ut des와 동일)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얼핏 이해는 되지만 여전히 낯설다. 겉보기에 양의

간은 점토판과 비슷하다. 한 손에 쏙 들어가는 크기이며, 한쪽은 매끄럽고 다른 한 쪽은 독특한 무늬가

있다. 네 개의 위장과 오른쪽 콩팥을 밀어 낼 때 매우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 내는데 바빌론 사람들은

이 무늬를 통해 문자에 견줄만한 복잡한 기호 체계를 읽어 냈고, '바루'라고 불리던 전문적 점술가들에

의해 신들의 메세지를 이해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쌀의 흩어지는 모습이나 물결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고 점괘를 읽어 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 재미있다. 새로움에 대한 충족이라는 부분도 그렇고, 막연함에 대한 해소라는 부분도 그렇다.

옮긴이가 그동안 한국에서 중동 고대사를 소개하는 책이 전무하다시피 하다고 말한 부분이 이해가

된다. 읽는 내내 20여년전 '고대근동사'에 대해 딱 한 권의 책으로 머리 터져가며 공부하던 그 시절이

생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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