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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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그렇기에 누구도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는 없다. 죽음 앞의 유한한 날들,

어쩌면 이곳은 또 다른 고통 일수도 있다. 그 죽음을 맞이하며 담담히 써 내려간 그녀의 글은 그래서

더 갚은 울림을 준다.

나쁜 소식의 마지막 문장, 마지막 단어를 듣기 전까지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구별할 수 없다고

애둘러 말하지만, 비록 그 사실을 아는 것과 마주하는 것이 하늘과 땅 만큼 다른 일이지만, 막연했던

느낌이 현실이 되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고통이다. 그리고 그녀는 '내 생이 짧아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가끔 삶을 피하기 위해 삶의 막대한 부분을 쓰기도 한다. 절망과 슬픔을 마주하기를 피하고

서로의 인생을 감춘다. 마치 자기 안에서 울리는 굉음을 듣지 않기 위해 억지로 귀를 틀어 막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소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난다. 설명할 수 있는 슬픔, 불안, 불행은

오히려 쉽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슬픔과 불안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탈출구가 없는 동굴

속에서 스스로를 가망 없이 소진시키며 그렇게 병들어 간다. 그녀도 그랬다. 그래서 더 아파했고

더 고통스러웠다.

사람들은 내가 나로 산다는 일이 얼마나 힘겹고 처절하고 악몽 같은지 좀체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잘 지내는 것과 전혀 상관 없는 삶을 살면서도 '어떻게 지내요?'라는 질문에 '잘 지네'라고

대답한다. 그녀는 이런 우리에게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로 살아가는 일'을 이야기 한다. 그녀는

'절대적인 고독의 시간'을 찾는다. 세상의 소음이 충분히 잠잠해지면 머릿속에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들을 제대로 들을 수 있기에 자아의 속삭임을 들으려 한다. 무엇이 나 다운지를 발견하고 그 발견을

일상에서 드러내려 한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살면서 머릿속을 스쳐가는 모든것을 경험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모든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두뇌마다 다르게, 한 번이자 영원토록 홀로 경험한다. 인생은 0으로 곱하기를

해야 하는 등식이다. 그 삶에 아무리 많은 것을 더하고 보태도, 아무리 큰 숫자가 된다해도 결국 0이 된다.

그녀는 이 사실을 깨달으며 희망을 본다. 진실을 직시하고 그 진실 앞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시도를 하는 것, 적어도 자신이 진실이라 생각하는 것 앞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 그런 사람이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이고 인생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글은 그녀의 노트북에서 발견되었다. 그녀는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 가기 전까지 자신의 삶에 대해

흔적을 남겼다. 그런 그녀의 마지막 문장은 '물론 자신의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는 누구도 모르지만'이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공평하게 찾아오는 죽음을 앞에 두고 조금은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아직 남아 있는

삶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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