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뒤 맑음 상.하 + 다이어리 세트 - 전2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날이어서 오히려 불온했다.' 에쿠니 가오리 다운 복선이 깔리며 이 책은

시작한다. 아름다움과 불온의 공존. 저자는 여행의 묘미를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정리한다. 쌈박하다.

(삼박하다는 좀 약하다) 짐은 최소한으로 하고, 집에 전화할땐 공중전화로, 휴대폰은 꺼두고,

여행 하는 동안 일어나는 일은 둘만의 비밀이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 절대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규칙을 가지고 여행을 감행하는 어릴적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레이나와 어른스러운 사촌언니 이츠카.

여행은, 어딘가에 가려면 그 어딘가가 어디인지 정해야 하고, 정하지 않고 찾아 나선다해도 우선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정해야 한다. 둘은 그렇게 여행을 시작한다. 현실적인 걱정이 생긴다. 과연

미성년자인 여자 아이 둘이서 그것도 미국을 여행한다면, 그것도 돈이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 올거라는

생각으로 신용카드까지 정지시킨 상황에서 이 아이들에게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아주 오래전 대학 신입생 여름방학에 무작정 떠났던 무전여행이 생각났다. 처음 계획은 딱 2주 였는데

이런저런 우연과 만남으로 무려 40일 가까이 여행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옅은 미소가 지어지며 '이

아이들도 잘 해낼 수 있을거야'라는 위안과 바램으로 책장을 넘겼다.

여행은 늘 그렇다. 새로움과 낯섦의 만남이고 연속이다. 끝없이 새로운 것과 만나고 연속해서 낯선

상대와 부딪치고 그러면서 하루 또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레이나와 이츠카도 그랬다. 아주 작은

일상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듯 여행은 작고 작은 사연들이 모여 하나의 삶을 만들어 간다.

그러면서 낯섦은 어느새 '일상'으로 바뀐다.

미시즈 패터슨과의 이별을 앞두고 이츠카가 말했던것처럼 이제 만나지 않는다는 것과 이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나도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인 두 소녀도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도 경험했다. 여행은 돌아감이 있다. 시선. 이 소설 속에도 시선과 생각이 겹쳐지고

나뉘어진다. 아이들의 당돌한 가출(아. 가출은 아니다. 편지에 분명 자신들은 가출이 아니라고

밝혔으니, 그런데 가출이다.)을 대하는 어른들의 생각이 흥미롭다. 늘상 가출하는 아이들을 보아 온

경찰은 그냥 대스럽지 않다. 늘 그래왔으니까. 하나 애지중지 키운 딸을 둔 부모의 입장은 도저히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도, 용납하기도 어렵다. 화가나고 걱정도 되고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그런가하면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아이들이 대견스럽고 그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시간이

지금이길 응원하는 부모.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머리의 믿음과 마음의 걱정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여행이 좋다. 처음엔 완벽한 스케줄이 준비되지 않으면 어색하고 불안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계획 없음이 편하고 좋다.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잔다.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는 오롯이 너만의 시간이다. 딱 두가지, 조용하고 깨끗한 잠자리와 맛있는

커피는 항상 미리 준비한다. 혹시 몰라 차에는 드립을 할 수 있는 도구가 준비되어 있다.

사촌지간인 이 두 소녀의 여행을 보며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들었음이 느껴진다.

이 책 '집 떠난 뒤 맑음'을 보는 내내 나의 마음은 걱정과 기대로 가득했다. 그런 면에서 에쿠니

가오리는 성공했다.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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