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활 건강
김복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정한 공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내가 실제로 띄워서 비운 '의 지 의 이 따 위 공 백 이 아

니 라' 마침표로 생략되거나, 괄호로 비워둔 거기 그 세계'. 이소호 시인의 글에 나오는 글귀인데 한참을

보며 마음에 울컥함을 받았다. 먹먹해진다. 억지로 의도해서 마지 못해 비워 놓은 그 공간이 아닌 마침표와

괄호를 부여하여 처음부터 준비한 그 공간. 아마도 우리에겐 이러한 삶의 여백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마침표도 쉼표도 없이 앞만 보고 내달려 온 우리에게 시인은 잠시 멈춰섬을 제안한다. 그 공간은 우리에게

'숨'을 준다. 들숨과 날숨으로 거칠게 내어 뱉는 우리에게 조금은 편안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휴식응

제공한다. 이 휴식이 우리를 숨쉬기 하고, 다시 걷게 하고, 다시 뛰게 한다. 작가에게 쓴다는 것은 아픔이다.

그래서 '당신의 글은 아파요.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아파요'라고 말하는 독자에게 '저도 아파요.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아파요. 하지만 쓰지 않는 것은 더 아파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열 명의 작가 중 나와 비슷한 인간(나는 나를 인간이라 부르기에 나와 비슷한

작가에게도 동일한 호칭을 부여한다)을 만났다. 나는 건강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성다영 시인도 그런것

같다. 건강에 좋으니 먹으라고 하면 병적으로 멀리하고 몸이 좋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살았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동질감은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과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주 많이 다르다. 건강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기에 나의 삶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시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이건 마치 두 눈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에 홀로 외로이 살던 외눈박이가 평생 처음 또다른 외눈박이를 만난 기분이랄까.

고통을 느끼지 않음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지만 원하지 않는 고통은 괴로운 것이다. 그럼에도 원하지

않는 고통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진정한 고통이란, 원치 않는 고통이라 말한다. 물론 나는

이 정도는 아니다. 나에게 고통이란 단지 귀찮은 것이다. 몸의 아픔은 고통이지만 정신적 괴로움은 쾌락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장켈레비치와 파스칼 뒤퐁과의 대화는 고통과 존재에 관한 우리의 생각의 폭을 넓혀

준다. '희망은 존재하는 사실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지요. 존재 안에는 자연히 존재의 연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중단은 밖에서 오는 것입니다. 존재는 그 자체의 부정을 함축하지 않지요. 부정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므로 당신이 병에 걸린다면 불운을 만나는 것이지요.' 아마도 어쩌면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 살지 않았나 싶다. 고통의 최고의 긍정은 죽음이다. 건강한 사람들이 견디는 혹은 견딜 만한

절망은 진정한 절망이 아니다. 절망은 진실 할 수 없다. 그래도 지금 우리는 그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보고

있다.

'지금의 나는 좋아하는 일을 자주 하고자 노력하는 잔잔하게 망가진 인간이다'라는 김복희 시인의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를 대변한다. 자잘하게 망가진 몸과 정신이란, 인간으로서나 생명으로서나 평범한 상태이다.

누구에게서 나든 어떻게 나든, 난 것은 제 나름대로의 속도로 망가지게 되어있다. 그러니 받아들이고

순응하면 된다. 억지로 버팅기려 할 필요도 없고, 억지로 거스르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해두는 것으로 자신을 준비시키면 된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함께 할 수 있는 일도 다 해보고 시인의

말처럼 '굴러 가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두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