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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생각들 - 오롯이 나를 돌보는 아침 산책에 관하여
오원 지음 / 생각정거장 / 2021년 3월
평점 :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운동이고 수련이며, 누군가에게는 영감의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자기 존재를 사유하는 시간이었다는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이유가 있고 당위성을 가진다. 각자의 위치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너무 획일화되고
의식화된 사고를 가진 우리에게 다양성에 대한 인정은 아직은 한참 먼 미래 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걷는다는 것. 그것은 우주와의 만남이라는 저자. 너무나도 가고 싶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하며 매일 걷는다는 저자. 죽음 같은 밤을 경험한 뒤 아침에 새로운 생을 부여받은 세포가
걷는 것은 자신과 만나는 명상이며 아침에 걷는 것은 그날 태어난 새로운 나에 대한 축복의
의식이라고 말하는 저자.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공존하며 혼자 걸었지만 그 끝에서는
'함께' 걸었다고 생각하는 저자. 그래서 저자에게 걷는것은 '나라는 우주를 만나는 여행'이다.
그리고 그 길을 걸음에 감사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저자. 나도 커피를 좋아한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해보았다. 역시
그랬다. 저자 역시 사실 커피는 냄새(나는 향기라는 말보다 냄새라는 말이 더 좋다)가 이미
절반의 매력을 다한다. 밀폐용기를 열었을 때 나는 그 냄새, 그라인더에 옮겨 담을 때 나는
그 냄새, 서걱서걱하며 갈려 들어가며 나는 치열한 그 냄새, 다 갈린 커피를 여과지에 옮겨
담으면 맡을 수 있는 그 냄새, 뜸을 들이기 위해 30초 정도를 물을 머금게 놓아 두었을 때
나는 그 냄새, 온통 그 냄새에 취하는 커피는 이미 천국이다. 저자는 커피를 내릴 때 뜨거운
물에 닿는 순간 나는 그 신선한 냄새를 담아 팔수 있다면 편의점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될것이라고 말한다. 커피는 그렇다.
나도 영화 '미션'을 보면서 오보에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구도자의 떨림을 그대로 전달해 내는 그 악기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고
많은 이들이 오보에를 배우고 싶어 했던 기억이다. 물론 단지 배우고 싶어만했다. 그 오보에를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다시 만났을 때 오보에는 철저한 고독이었고 미완과 미성숙에서
완성과 성숙으로 가는 고독한 질주를 하고 있었다. 저자도 그랬던것 같다. 그후 오보에를
샀다. 그리고 일년여를 열심히 배웠지만 딸리는 호흡을 주체할 수 없어 그만두었는데
이 책에서 다시 만났다.
사랑할 때 가장 로맨틱한 행위는 손을 잡는 것이다. 두사람이 처음 시작하는 행위도 손을
잡는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시작하는 Touch이자 가장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행위이며
한 인간으로서 이해의 행위이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밋밋하고도 절실한 표현이다.
손을 담고 걸어 간다는 것은 사랑의 '정체'가 아닌 움직임과 나아감, 그리고 생활과 밀접하게
살아가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놓아줌'의 매력도 있다. 언제나 손을 잡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청춘의 사랑, 젊음의 사랑이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의존이라면, 언제
먼저 떠나 더 이상 손을 잡아 주지 못할 노년의 사랑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독립일지도 모른다.
존중하기 위한 '손 놓음'. 이것은 '간절한 잡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
'애씀은 예쁨이다'. 참 좋은 말이다.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애쓰지 말라고 해도 된다. 그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애쓰는 것이기에 그들에겐 너무 애쓰지 말라고 해도 된다. 얼마나 대단한
'애씀'이고 얼마나 안쓰러운 '애씀'인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 '애씀'인가? 잘되었으면 해서
애쓰고, 걱정이 되어 애쓰고, 애쓰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힘들지만
애 쓸 수 있는 일이 있어 고맙고 감사하고 오늘 하루의 애씀이 감사하다.
저자의 아버지가 생의 끝자락 즈음에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평범하게 사는게 가장 어려운 거란다." 그래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