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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라
김지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고 대부분 자신의 상처가 가장 아프다. 저자도 그랬고 모든 사람이
슬프고 자신의 삶에 실망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이 책을 썼다. 우리의 상처는 자신의 삶을 갉아 먹고
잠식한다. 그래서 항상 자신이 없고, 차갑고, 감정을 못 느끼며,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깨진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 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 걷는다. 남들이 볼라치면 뛰기도 한다. 차가워진 국을 데우듯,
차갑게 식어 버린 마음에 불을 지펴 본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하루를 산다.
이 책은 첫 장부터 섹스 이야기가 등장한다. 보통 가운데나 끄트머리 정도에 오는 이야긴데 첫 장부터
'복잡한 섹스'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던진다. '섹스 할 자유는 엄청 강조되었으나 섹스하지 않을 자유는
매우 축소되었다'. 서로 알기도 전에 사랑하기 전에(이렇게 말하면 너무 나이 들어 보일지도 모른다)
너무 빨리 모텔 키를 손에 쥔다. 생각 없이 그냥 하는 섹스는 놀지도 않고, 대화도 없고, 친해지지도
못하는 오직 섹스만이 주제가 되는 삭막한 연애가 된다. 그래서인가. 모텔엔 밤낮이 없다. 동물의
왕국이 아닌 이상 섹스는 종족 번식이나 성욕 해결 이상의 심오한 의미를 지니는데 하룻밤이 그냥
하룻밤인 경우가 너무 많다. 최소한 지난밤의 섹스를 떠올리며 머리를 쥐어 뜯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다림은 기다림 그 자체로 이미 행복하다. 간절한 기다림이라는 터널을 지나면 진심으로 나를 기다리는
너를, 혹은 내가 기다린 너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그 기다림은 사랑이다. 핸드폰이 없던 그 시절
공중전화 부스에 길게 늘어선 줄은 모두에게 간절함이었다. 추워도 더워도 눈이와도 비가와도 그
간절함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킨다. 이렇듯 기다림은 추억이다. 밤 늦게 돌아 오는 딸을 오매불망 기다린
엄마가 저자의 인생에서 나를 진심으로 기다려준 첫 번째 사람이듯 나에게도 그런 기다림이 있다. 짝
사랑의 아픔을 첫 사랑으로 가진 나이기에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학교가기 전에 얼굴 한 번 보려고
삼십분을 일찍 나와 골목 어귀에서 한 없이 기다리기도 하고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서는 공부는
뒷전이고 그녀가 보이는 자리에 자리를 잡고 그냥 쳐다봤고 교회 성가대에서 매일 뒤통수만 보는 것이
싫어서 성가대를 그만 두고 그녀가 잘 보이는 자리에서 예배가 아닌 그녀를 봤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거리는 그것이 나의 첫번째 사랑이었고 첫번째 기다림이었다. 결국 나는 그녀와 말 한마디도
못해봤다.
배가 고플 때는 온전한 한 끼 식사를 해야 허기를 달랠 수 있다. 밥 반공기로는 어림도 없다. 외로움도
그렇다. 외로운 사람에게는 온전한 한 사람이 필요하다. 어떤 터 위에 집을 짓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듯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는 중요하다. 욕심과 배신, 죄책감과 한숨 위에서 지은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관계를 지배하는 것은 의식 보다도 무의식 일 때가 더 많다. 용서와 이해를 하기 위해 거리가 필요하다.
더 이상은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는 안전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거리는 쉼을 주고, 용서의 공간이 된다.
저자의 마지막 말이 좋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같이 낄낄 거릴 사람과 같이 욕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함께'와 '사랑'을 포기하지 말고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고, 함께이면서 혼자인 그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아직 남은 시간이 많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