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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들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월
평점 :
말이 전력질주를 할 때 먼지가 날리며 따각 따각 소리를 내며 달리는 모습을 '갤롭'이라 하며
여기에서 '갤로퍼'라는 차의 이름이 나왔고, 말이 스치듯이 뛰는 것을 '스윙'이라 하며 기타
연주자들이 말하는 스윙이라는 기법이 이 모양을 가르키는 것이며, 말이 먼지를 피우지 않고
마치 속보를 하듯이 톡톡톡 땅을 치는 모습을 '트롯'이라 하며 일본 사람들이 트롯을 발음하기
어려워 '도로또'라 부른 것이 지금의 '트로트'가 되었다는 설명이 참신하다. 물론 우리는 트로트를
단순히 주법이나 기법이 아닌 문화로 받아들여 서민들의 심금을 울리는 우리의 소리로 생각한다.
트로트는 연주 장르를 가르키기 보다는 정서적 양상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 될 때 더 근사해 보이고
어울린다. 그 세속적 별칭인 '뽕짝'은 사회주의 예술론에서 '인민성'이라 부르는 대중적 통속성을
이르는 말에 가깝다. 이는 통속사적 연대감의 측면과 시대적 호흡의 측면에서 그렇다.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부르던 노래들은 모두 '존재의 온전성'을 떠올린다. 유행가를 듣는 그 시간을 통해
고향을 사랑하는 시간을 갖았고, 살아내온 풍속사의 향기를 맡았으며, 세상살이에 지친 영혼을 달래는
위무의 시간이다.
유행가는 어쩔 수 없이 풍문과 연결된다. 남진이 월남전에 가서 노래를 너무 많이 불러 목이 망가졌
다느니, 전라도 출신이어서 월남을 갔다느니 하는 말은 애교 차원으로 받아 줄 수 있다. 가수 '남진'을
계급적 '불우'를 설파할 대중 기호로 사용하려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유행가는 어쩔 수 없이 정치적
감정이 개입된다. 1956년 대통령 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나온 신익희가 호남선 열차를 타고 전북
익산으로 가던 중 돌연 급사한 사건을 묘사한 듯 한 '비 내리는 호남선'이나 장기집권을 획책하려는
자유당의 부정선거가 극에 달하자 지식인들이 양심 선언을 하고 교단이나 공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며 유행하던 '유정천리'는 그 확산을 막기위해 금지곡으로 지정하기에 이를 정도로
강렬했다. 이후 '자유당 반대 운동'은 2.28 학생 봉기와 3.15 부정선거로 이어지고 이에 강력히 항의
하는 학생들에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대응하여 김주열 사건이 발생하고 전국 청년 학생들이 봉기한
4.19가 터지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위대와 함께한 '유정천리'는 결과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정적 암살로 연명해 온 이승만 독재의 숨통을 끊는 노래가 된것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강점기에도 노래를 통한 저항과 비통함을 전한다. 일제 강점기를 통해 비애와 한탄과 폐허의 감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퇴영적 식민 가요의 한 전형으로 들먹거려지는 '황성옛터'도 한편으로는 순종의
죽음을 슬퍼한 조곡이었다. 실제로 이 노래가 1932년 빅터레코드를 통해 세상에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총독부는 나라를 잃은 민족 정서를 일깨우는 노래하며 금지령을 내리고
당대의 민중은 그 노래를 부르다 검거되어 즉결 처분을 받기도 했다.
역시 흘러간 이야기를 듣고 보는 것은 재미있다. 그 중 고은 시인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김민기 선배의 '가을 편지'와 양희은이 불러 인기를 얻었던 '세노야'가 시인이
술집에서 외상술을 마시고 술값 대신 냅킨에 써준 즉흥시였다는 사실과 바로 직전까지 스님이었던
사람을 기독교 방송에서 직책을 주었다는 사실은 흥미를 떠나 놀라움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가을이면 직직거리는 LP판을 통해 쇳가루 섞인 김민기 선배의 '가을편지'를 듣는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선배는 노래를 참 못하고 나는 그런 선배가 부른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로 끝나는 '봉우리'가 제일 좋다.
노래의 생명력은 노래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부르는 자의 마음 속에 있다. 삶의 한 때 귀에
와닿았던 노래는 찰나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반평생을 따라다닌다. 그것은 단순한 '찰나'
하나가 아니라 얼마나 큰 영혼 속의 찰나들과 함께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찰나를 살고 있다.
'유행가 지대'라는 제목과 글의 내용이 낯설지 않았는데 역시나 아주 오래전 '말'(1991년)지에 실렸던
글이다.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