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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블랙 아이드 수잔. 처음에는 주인공 이름인줄 알았다. '영원한 행복'이라는 예쁜 꽃 말을 가진
이 꽃은 '루드베키아(Rudbeckia)'라 불리는 삼옆국화다. 꽃심이 블랙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주인공인 테사가 죽은 여인들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곳 주변에 피어 있던 꽃으로 그 때 죽은
희생자를 가르켜 부르는 말이다.
16세, 어린 나이에 죽음의 목전에서 살아 남은 아이. 그러나 평생 그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하는
아이. 우리는 이 아이의 삶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아니면...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자신의
그때 나이와 비슷한 소녀의 엄마가 되어 있는 테사이지만 여전히 그날의 악몽은 살아 있다.
자신의 증언으로 사형을 언도 받은 범인의 사형집행일이 점점 다가오자 자신의 증언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때 그녀의 집에는 모종삽이 사라지고 땅이 파이고 블랙 아이드
수잔이 심겨지며 소설의 긴장감이 더해진다. 선이 굵은 스릴러도 좋지만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다루는 스릴러의 몰입감이 좋아 주로 읽는 편인데 이 책이 그렇다. 본인이 심지 않은 그 꽃이
자신의 집에 심겨져 있는 것을 발견 했을 때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소름이 올라왔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하더라도 그 기억은 생생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질거라는 어설픈
위로는 하지 말자. 정작 본인이 그 일을 당했어도 그럴 수 있을까. 그 고통은 지워지지 않는다.
생존자는 구경거리가 아니다. 알려야 한다는 자기들만의 의무감으로 사건을 파헤치고 희생자들을
다시 한번 도마에 올려 놓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다지기를 하는 형태가 이젠 역겹기까지 하다.
정작 밝혀야 하는 것은 못하면서 말이다. 그런면에서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그 꽃은 '영원한 행복'이 아니라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과도 같다.
이 책에는 모호함과 의문이 자주 등장한다. 32시간의 기억 상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리디아 벨
가족, 교도소에 있는 범인이 진범이 아니라는 듯 테사를 위협하는 상황들, 사형 판결 이후 테사의
집에 심겨진 블랙 아이드 수잔과 입을 열면 리디아를 수잔으로 바꾸겠다는 경고 메세지, 뭔가
흐릿하고 선명해 보이지 않고 알쏭달쏭한 테사의 행동, 이 모든것이 하나로 모아져 이 책을 끌고
간다. 그리고 이 모호함은 사백페이지를 넘어서야 조금 풀어진다. 그러다보니 독자의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리고 조금은 허무한 결말이 준비되어 있다. 뭔가 콱 짜여진 스케줄 대로 움직이다
보니 결정적인 부분에서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기분이 든다.
이 소설이 영화화 된다고 하니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세련미로 그려진 인물들을 어떤
배우들이 캐스팅되어 표현해 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