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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평점 :
이솝우화. 어렸을 때 세계 명작 동화 전집(빨간 표지로 된 책)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하고 책장에
꽂혀 있던 책. 다행히 문장이 길지 않았던터라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어 자주 손에 쥐었던 책이다.
솔직히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이 처음부터
성인들을 일깨우고 지혜를 전달할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문득 어릴 때 '이 책 왜
어렵지?'라고 했던 일들이 생각이 났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솝과 그의 우화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이나 소크라테스가 사형집행을 앞두고도 탐독했던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히 입증이 된다. 특별히 당시의 주도 세력인 귀족이나 지식인이 아닌 당시 그리스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원전 완역본이다.
'독수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변신할 때의 모습이기도 하고 제우스의 명령을 전달하는
사자이고 해서 그리스 그림과 조각에서는 제우스와 독수리가 함께 등장하는 사례가 많다. 인류를
위해 불을 훔쳤던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가 보낸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쪼아 먹히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독수리가 이솝우화전집의 전반에 자주 등장한다. 의도적이였으리라
생각된다. 신인 제우스를 표현하며 그 조차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실제로 우화의 내용 중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라는 문장이 여러번
등장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러한 그의 '도발'은 당시 그리스 권력층의 노여움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이솝은 델포이에 가서 왕과 협상을 하며 '독수리와 쇠똥구리(쇠똥구리로 부터 독수리의 알을
지키려던 제우스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내용)'를 전하다가 델포이 사람들을 격노하게 해서
낭떠러지에 던져져 죽임을 당한다.
아주 오랜만에 이솝우화를 읽었음에도 여전히 날카롭고 글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리만치 폐부를 파고든다. 수 많은 동물들에 빗대어 풀어 내는 기득권에 대한 저항과 반발과
쓴소리는 좋은 글들이 그렇듯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강하다. 언젠가 기사에서 '왜 팔리지도 않는
책을 출간하냐'는 질문에 '누구 한 사람은 이런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했던 분이 생각난다.
현대지성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그 노고에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