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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
이애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세상에는 '빠른 것'과 '느린 것' 두 종류의 속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분법적 사고가 세상의
속도를 '빠름과 느림'으로 나눌 뿐이다. 어느새 '빠름'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느림'은 어쩌면
형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느림이 너무 갑자기 오면 우리는 더 힘들어 진다. 빠른 속도로 달리다
갑자기 멈추면 넘어지는것 처럼 말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보통의 속도'를 말한다.
겨울의 앙상하게 뻗어 있는 나무 가지를 보며 '드러냄'을 이야기하는 저자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자신의 것을 덜어내고 버리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짜 나'를 만들어 간다. 이것저것 치장하고
묶어서 억지로 만들어낸 내가 아닌 벗겨지고 덜어내어 오롯이 남은 진짜 나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인생의 겨울이 왔다고 슬퍼할 이유가 없다. 진짜 나를 찾는 시간이기에 우리는 그 시간을
더 많이 누리고 간직해야 한다. 너무 촘촘해 지려고 애쓸 이유도 없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며 채우고
버리고를 반복하면 된다. 결국 인생은 '진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앞이 안 보여서도 아니고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어서도
아니라 자꾸 뒤를 돌아 보기 때문이다는 저자의 충고는 현학적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나 간 것들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인간이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그 추억이 우리의
앞길을 열어 주지는 않는다. 나아갈 때와 멈출 때와 뒤를 돌아 볼 때는 분명 다르게 다가온다. 자꾸
뒤를 돌아 보느라 앞을 향해야 할 걸음이 멈춰지고 뒤틀리고 몸의 균형을 잃기도 한다. 결국
'시선'이다. 우리 인생에서 어디를 보아야 하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는 대부분 '언젠가'를 기대한다. 그것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 언젠가를 위해 준비하고 쟁여놓고
쌓아 놓는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분명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언젠가 병'은 그 언젠가 때문에
불필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게 한다. 내가 사라지면 모두 쓰레기가 되어 버릴 그 언젠가의 것들을
조금씩 버리는 시도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버려야 하며 아무리 예쁜
것들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인생은 버리는 연습을 통해 만들어져
간다. 교회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는 저자의 후배가 한 말 처럼 '이제는 음을 덜어 내는 연습을
해봐요'라는 말처럼 인생은 덜어내고 버림의 연속이다.
이 책을 손에 쥐고 단숨에 읽어냈다. 처음 받아 들때부터 주던 편안함이라는 느낌은 책을 덮는 순간에도
찾아온다. 책의 제목 처럼 '보통의 속도로'를 자신의 삶을 통해 만들어가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한편으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저자가 부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