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본 철학 수업 - 세상을 바꾸기엔 벅차지만 자신을 바꾸기엔 충분한 나에게
전진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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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적이고 화려함으로 점철된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철학은 사실 조금은 먼 나라 이야기다.

무겁고 복잡하고 난해한 그것을 왜 꼭 해야하냐는 질문 앞에 가끔은 멈칫 거리긴 하지만 철학의

즐거움은 어느 광고에서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배우가 말하는 '니들이 게 맛을 알아'와 같이 해 본

사람 만이 알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사실 나도 그 매력을 완벽히 맛 보지는 못했지만 철학이 주는

희열과 상쾌함은 아주 조금 맛 보았고 지금도 그 맛이 그립다. 정답이 없는 삶에서 철학은 정답이

아닌 '사는것'에 대한 바른 길을 제시한다. 그러나 여전히 철학은 어렵다.

이 책 '소르본의 철학수업'은 독특하다. 기존의 철학 서적에서 경험한 고리타분의 강도가 아주 엷다.

그렇다고 깊이가 얇은 것은 아닌데 저자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자연스러움이 철학이라는

고리타분하고 쉰내 풀풀나는 학문을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로 끌어 내렸다.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철학에 대한 책이 아니라 저자의 철학 수업 과정에 대한 책이다. 물론 글의 일부는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철학이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문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 했다는 것 만으로 이미 저자는 평범하지

않다. 1253년 창립된 이래 빅토르 위고, 파스퇴르, 베이컨등을 배출한 이 대학은 문학, 의학, 약학,

법학, 철학을 가르치는 파리 1 대학(소르본-팡테옹), 파리 3대학(소르본-누벨), 파리 4대학(소르본),

파리 6대학(소르본-마리퀴리)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고 저자는 파리 1대학을 나왔다.

파리는 정말 매력적인 도시다. 현재와 중세 그리고 고대가 어우러진 거리와 골목 구석구석에 숨겨진

보물 같은 카페와 펍과 거리 곳곳에 널려 있는 예술가들의 흔적, 그리고 무엇보다 파리 여인들 특유의

느낌은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곳에서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을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적중한다. 그들 특유의 느릿함은 견디기 쉽지 않다. 저자가

삼고초려가 아닌 십고초려만에 은행 계좌를 개설한것 처럼 말이다. 뭐 하나 바로바로 해주는 법이

없다. 이날은 이것, 다음날에는 저것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담당자와 친해져 있기도 하다.

체류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노력은 '아 집에 가고 싶다'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힘겹다. 경시청 앞에

길게 늘어 선 줄에 몸을 낑기고 순서를 한 없이 기다려야 했다. 여름에는 찌는듯한 더위를 참으며

겨울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견디며 길게 늘어 선 줄을 지나 겨우 차례가 오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어진다. 저자가 말했듯이 그들에겐 우리를 집으로 돌려

보낼 수만가지 이유가 있다.

프랑스에선 아예 명품으로 도배를 하든 동네 시장에서 남이 입던 옷을 아주 싼값에 사서 입든

별로 의미가 없다. 길거리에는 빈티지와 구제와 명품이 공존한다. '개인 취향'이다. 취향이란

개인을 대변하는 기능이 있다. 평범하고 무난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아무 옷이나 걸 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취미를 갈고 닦는데 부단히 애를 쓰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을

돋보이게 할 옷들을 몸에 걸치다 보면 남들과 구별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대로 벗은 몸이

민망하듯 취향이 없는 삶이 공허하리라는 두려움을 갖는다. 특정한 무언가를 좋아 한다는 것은

그 외의 다른 것들에 관심이 덜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규정된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이며

다른 취향을 가질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단순히 다양성을 인정하는 도덕적 규율이 아니라,

삶과 함께 선고 받은 자유가 제시하는 길이 무한 하다는 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자기가

아닌것 조차 긍정할 때 비로서 자기 인식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이 책에는 참 좋은 글들을 많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관용'에 대한

글이다. 관용은 인정받거나 인정할 수 있다는 전제가 아니라, 너나 나는 똑같이 실수 할 수 있다는

상태에서 출발한다. 자신을 출발점으로 삼은 이상 자유와 관용은 한계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타인의 다름이 아니라 나의 다름이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며 자신에 취해버리는 기만이

아니라 타인의 것마저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똘레랑스(tolerance)가 필요한 시대인것 같다.

이 책은 쉽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 책에는 한 여자의 치열함과 간절함이 담겨 있다. 잔뜩 엉켜 버린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 하나의 목도리를 만들어 가는 그의 삶의 절실함이 녹아 있다. 2020년 가을

학기부터 미학을 공부할 그의 삶이 기대된다. 뻔한 삶이 아닌 '그'만의 삶을 사는 저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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