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 과정'이라는 E.H 카 교수의 말은 현대사가 제대로
연구조차 되지 않아 새로운 사실이 발견 될 때마다 당황하고 놀라는 일이 다반사인 우리에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이다. 역사가 바로 선 나라가 강한 나라이고 역사를 제대로 아는 이가 강한
국민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약한 나라에 약한 국민이 아닐까 싶다.
역사는 늘 승자의 전승기록물이다. 역사가 객관성을 가져야 함은 당연한 사실인데 승자의 전유물이다
보니 승자의 입맛에 맞는 글로 채워지고 진실은 저 멀리에 감춰지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그렇다. 흔히 '긴급조치 시대'라고 말하는 유신 시기는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사실'과
관련해 암흑기이다. 긴급조치 9호 때문에 어지간한 기사는 신문에 한 줄도 실리지 않을만큼(유산체제의
붕괴를 시작하는 부마항쟁 역시 기사화되지 못했다) 국민의 알권리가 철저히 차단된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긴급조치는 1974년 1호로 시작해서 유신체제가 몰락한 1979년까지 모두 아홉차례 발
표됐는데 이중 가장 교묘한 것이 9호이다. 유신체제 반대운동에 대한 보도를 철저히 금지하면서
말 한마디나 문장 한 구절로도 구속할 수 있는 제도가 긴급조치 9호다. 당시의 유행어가 '전 국토의
감옥화', '전 국민의 죄수화', '전 여성의 창녀화', '전 경제의 매판화' 였던 것으로 보아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 준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투옥 된 어느 기자의 1심 법정
최후 진술은 당시 사회가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 시대에 가장 비민주적으로 후세에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은 판사와 교수와 기자들이다.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지 않는 판사, 정의로움을
가르치지 않는 교수, 정의로움을 보도하지 않는 기자, 이 사람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범법자다'
이와 비슷한 사태가 유신체제를 갈아 엎고 나타난 신군부에 의해서 동일하게 발생한다. 1986년 9월
'말'지에서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시달한 584건의 보도지침을
폭로하는 특집호를 발행하면서 드러났다. 이를 통해 신군부가 기사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보도할지 여부와 보도한다면 형식, 내용,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이지 대해 세밀하고도 철저하게
지시했음이 명백히 밝혀지며 한국 내에서 군부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이후 전두환이 '4.13호헌 조치'라는 멋진 헛발질을 해 주면서 한동안 주춤하던 민주화운동과 개헌
운동에 불을 지핀다. 이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직격 최루탄 피격 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숨죽여 있던 민중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기 시작한다. 당시 전국은 '독재 타도와
호헌철폐'라는 구호로 휩싸였고 결국 '6.29 선언'이라는 항복을 받아 낸다.
반가운 사진 하나를 만났다. 1988년 8.15 남북학생회담을 위해 독립문에 집결한 학생들이 판문점을
향해 행진을 시작한 후 경찰의 저지선에 막혀 연좌 시위를 하는 도중, 백골단 투입이 임박해지자
서로를 팔장으로 엮으며 농성을 하는 사진이다. 가운데 쯤에 이미 고인이 된 선배와 함께 구호를 외
치는 내 모습이 보인다. 당시 정말 더웠는데 근처에 상인 분들과 지나가던 회사원들, 그리고
학생들이 던져 준 생수는 영원히 잊지 못할 맛이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연행되어 서울 시내
각 경찰서에 분산되어 조사를 받았었다. 저자는 이 사건을 '통일 운동'의 폭발점으로 보고 안주하던
기성세대에게 통일이 대한 생각을 다시금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이 하나 있다. 역사는 아무리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써도 여전히
치우칠 수 밖이 없다는 점이다. 저자 역시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나 어쩔 수 없이 개인의
감정과 사견이 나오는 것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
과정'이라는 E.H.카의 말이 생각나는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짚어 주는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