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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 삶과 죽음을 넘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설영환 옮김 / 작가와비평 / 2020년 5월
평점 :
'무엇이 삶의 요점인가? 무엇이 가장 본질적인 것인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은 질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 질문에 답을 구하려고
살아간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작은 여우처럼
말이다.
이 책은 1939년부터 1944년까지 생텍쥐페리가 쓴 편지를 다룬다. 그의 편지 안에는 그에게 긴박하거나
급했던 문제들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는 탐조등의 역할을 하는 예언자적인 명석함과 현인과도 같은
지혜가 담겨 있다. '어디서나 우린 길을 잘못들었다. 우리는 더 많은 부유함과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본질적인 어떤 것을 잃어 버리고 있고 인간다움을 덜 느끼고 있다. 나는 죽음을 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태로워진 영적 공동체에 대해서 걱정한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생텍쥐페리는 반만 처녀인 X에게 연서를 보내며 이렇게 쓴다. '나는 당신을
마치치치....칠 듯이 사사....랑.....한....다.' 이 글귀 속에는 엉뚱한 것을 즐기는 즐거움과 농담을 하듯
툭 던지는 진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어떻게든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남정네의 애틋한 간절함과,
그렇게 사랑할수 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자조섞인 말투는 오히려 진심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바뀐 생활에 구역질이 나면서도 자신에게 부여된 어이없는 임무에 욕지기가 나오면서도 그는 여전히
X에게 편지를 쓴다. 그러면서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
이런 생텍쥐페리에게 찾아 온 전우인 기요메의 죽음을 통해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적 고민에
들어 간다. 자신도 언젠가 죽을 것이며 더 이상 시인들이 떠드는 추상적인 개념의 죽음이 아니고,
'인생에 회의를 느껴 죽겠다는' 사춘기적 죽음의 희망도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적 개념이었고 남자의
죽음, 즉 삶을 끝내는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개념이었다. 그는 자신을 결코 행복이라는 선물을 받은
적도 없고 행복을 받아 쥘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것은 마치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처럼 두렵다고 표현한다. 자신을 잔인하다고 말하지만 마음과 육체에 대해 잔인한 것이 아니라
영혼에게 잔인하다고 말한다. 이런 현실에 대해 그는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완전히 어리석고,
지독히 추악하고, 나는 신물이 났다.' 정신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더듬어 찾고 있고, 심장은 얼어
붙었으며, 모든것은 평범하고 모든것은 추악하고 자신의 인생에서 이토록 쓸쓸했던 적이 없다고 말하는
셍텍쥐페리는 자신을 '위로할 수 없는 비룡과 같다'고 표현하는데 이마저도 슬프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슬픔이 나를 정신없이 놀래킨다'
이렇게 자신만의 인생을 살았던 생텍쥐페리는 그의 친구인 피에르 다로즈에게 '나는 차라리 정원사가
되고 싶네'라는 편지를 남기고 1944년 7월 31일 아침 8시 45분 아네시 상공을 촬영하기 위해 비행했으나
그 이후로 돌아 오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로 존재하나 생텍쥐페리는 그 이후
어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이 시대를 견딜 수가 없다.'고 절규했던 자신의 삶에 대해
철저히 자신을 불태우는 영원한 사라짐으로 그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생에서 가장
정열적으로 인생을 불 태웠던 그 시절의 기록이다. 그는 언제나 모든 인간들을 책임지기라도 하는 듯이
외로운 싸움을 했고 자신의 삶을 밝히기 위해 글을 썼다. 어쩌면 '어린 왕자'는 자신이 꿈꿔온 자신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