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들의 방에 갇혀 살며 때론 일탈을 꿈꾸고 때론 안주를 한다. 우리는 때때로 마음이
심란하고 불안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산다. 그것들이 우리의 내면 상태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은채. 우리가 씻지않은 지저분한 상태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듯이
내면도 마찬가지다. 내면을 깨끗하게 유지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행복할수도 없고 우선은
스스로가 괴롭고 주변을 괴롭게 만들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만인이 아는 보편적 감정들을 다루며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가짜 현실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리라고 이야기한다.
생각은 자아도취적이고 독선적이다. 오만의 상태에서는 독재자가 된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높이는
마음을 감히 드러낼 수 없어 머릿속에서만 교만한 마음을 가지다가 점차 힘을 행사하고 다른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기도 한다. 스스로가 100% 옳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침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외부의 모든 저항은 몰이해로 생각한다. 늘 모든 일이 자기 식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지 않고 끝장을 본다. 오만의 방에 깊이 들어 갈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화나고
짜증나는 감정으로 인해 완력을 사용하려는 마음이 밖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이와 같은 오만의 방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으로 마음 챙김의 3단계에 해당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같은 'The Work'라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 방법은 우선 스스로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지, 괴로움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확인하면서 시작되며 이를 통해 오만의 방의 깊은 수렁을 건널 수 있는 동아줄 하나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처음 세상에 왔을 때 우리는 순수하고 맑은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제한된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아무것에도 동화되지 않은 상태로 순결하고 자유로웠다. 그 무엇에 대한 생각도 판단도
없었기에 그것은 우주와 하나가 된 상태였고 그 자체로 파라다이스였다. 그 후 우리는 외부의
음성들에 노출되며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한다. 우주와의 합일에서 벗어나 점차 개성적인
존재가 되어 간다. 이 개성적 존재는 점차 이야기를 받아 들이기 시작했고 꿈을 꾸게 되며 스스로를
감정과 생각과 동일시하고 그렇게 '페르소나'(persona, 그리스어로 마스크라는 의미)를 탄생시킨다.
이 페르소나가 우리의 에고(ego)이다. 진정한 자기는 시종일관 존재한다. 이를 깨닫기 위해 시각의
방향만 바꾸면 된다. 관찰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관찰하는 내적 심급(자각의 원천, 증인)에 주의를
돌려 궁극적 주체를 보는 것이고 지각 영역 자체를 보는 것이다. 마음을 넓은 곳으로 옮겨 끊임없이
관찰하고 알아채야 한다. 우리는 왔다가 가는 존재들이 아닌 시종일관 존재하고 보는 존재들이다.
이 책 처음에 쉽게 읽기 시작했으나 1장을 넘어가며 진지해졌다. 아니 진지해 져야만 했다. 얼핏
마음 챙김의 연장인듯 하다가도 어느새 더 깊은 생각의 정원으로 옮겨 가고, 그 정원을 평화롭게
걷는 듯 하다가 어느새 파도가 몰아 치는 바다 한 가운데 던져 버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나오길
요구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부처의 눈으로 예수의 심장으로 보는 이 장소에서 당신은 '스스로'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