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지킨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참된 진리 앞에서 죽음을 기쁘게 받아 들이며 담담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자신을 기소한 죄목 일부(청년들을 부패시키고, 나라가 믿는 진리와
다른 새로운 잡신을 믿는다)에 대한 변명과 그런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유하는 친구 크리톤과의
대화, 소크라테스의 친구와 추종자들의 대화인 파이든, 연애의 신인 '에로스'를 예찬하는 내용을 담은
'향연'.
참 귀한 글을 만났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책을 받아 들고 연거푸 두번을 읽었다. 최고의 지성이 벌이는 언어의 향연은
흥미진진하고 명쾌하며 신랄하다. 죽음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단호하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죽음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비겁함을 피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의해 사악함과 불의함이라는 불법을 저지른 이들에게 굴복하는
비겁함 보다는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결연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의 변명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멋진 말로 마무리 된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 떠나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 어느쪽이 더 나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오직 신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누가 과연 이렇게 담대하고 담담할 수 있을까.
자신을 고발한 이들 앞에 당당하고, 자신을 지지해 주는 이들 앞에 당당하며, 자신에게 사형이라는
어이없는 판결을 내리는 불의한 재판관들 앞에 당당하고, 스스로에게까지 당당한 그는, 스스로는
자신이 소피스트임을 부인했지만 분명 현자(지혜로운자, 소포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가움이 있다. 대학 시절 이후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향연'이다. 향연의 주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에로스 예찬'이다. 하지만 나는 대학 때 처음 향연을 접했을때도,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계속 이 문장에 마음이 간다. '지혜라는 것이 우리가 서로 접촉하기만 하면 좀 더 차 있는
사람에게서 좀 더 비어 있는 사람에게로 흘러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예전에도 그런
마음이었다. 세상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이 이런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조금 많이 알고 있는
사람과 함께 있음으로 그것이 흘러가서 서로가 이로울 수 있는 그런 세상 말이다. 고여 있어서 썩는
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내보내고 받아 들이므로 나도 살고 세상도 사는 그런 세상을 꿈꿔 보았었다.
지혜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더 가진 이는 덜 가진이에게 자연스럽게 흘려 보내주고 받아 누린이 역시 그
로인해 더 가지게 되면 또 다른 덜 가진 이에게 흘려 보내는 선순환이야말로 서로가 사는 '공생'인 것이다.
다시 '향연'의 본질로 돌아가서 소크라테스와 그의 추종자 사이의 에로스에 대한 대화를 읽다 보면
어마무시한 '말장난의 향연'을 만나게 된다. 비슷한 말들이 교묘히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며 반복되고
이어진다.이러한 대화는 에로스의 아름답고 좋은것에서 시작해서 추하고 나쁘다를 지나 결핍과 넘침을
거쳐 영원불멸에 까지 이른다. 알지 못했던 단어들이 툭툭 튀어 나오고 '있는'과 '항상 있는'에 대해
으르렁거리기도 한다. 에로스는 '자신에게 결핍된 아름다움'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정의하지만
사실은 아름다움을 향유하여 그 안에서 불멸과 불사를 획득하려는 감춰진 욕망이다.
이 책은 쉽지 않다. 잠간 딴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어느새 전혀 다른 곳에 가있는 자신을 발견하리만치
집중을 요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다시 읽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