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50은 반환점이다. 살아온 전반전을 뒤돌아보며 앞으로 살아가야 할
후반전을 준비해야 하는 바로 그런 시기이다. 그동안 세웠던 수많은 계획들을 점검해 봐야 하고
수정과 보완을 통해 남은 후반전을 대비해야 할 중요한 시기이기에 우리에겐 '하프타임'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이 비록 후회와 아쉬움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다시금 걸음을
내딛는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에게 인생 후반전을 맞이하기 전 '작전타임'을 요청한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는 지난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종종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를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단호하다. 그래봐야 소용 없다는 것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옛날에'는 과거를 주워 먹고 사는 이들의 신세한탄에
불과하다.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는 필요하지만 착각하지는 말자. 그 과거가 지금의 현재를 바꿔
놓을 수는 없다. '사람은 청년의 실수를 노년으로 가져와서는 안된다. 노년에는 노년의 결점이 있기
때문이다.'(요한 피터 에커만, Johann Peter Eckermann, 괴테와의 대화 중)
50은 지천명(和天命)으로 하늘의 뜻을 알고 그에 순응하는 나이인데 우리의 50은 너무도 많은 폭탄들을
껴안고 언제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하늘의 뜻은 커녕 자식들의 마음조차 알지 못해서 구박과
소외의 대상이 되버렸고 부부끼리는 서로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으르렁 대며 상처를 남기기 일쑤다.
저자는 이런 우리에게 '인생관을 바꾸라'고 한다. 무언가 대단하고 명쾌한 조언을 기대한 나는 조금
실망감이 생겼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내려 가며 그 실망감은 이내 안도감과 희망으로 바뀐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자신이 걸어 가는 인생의 베이스가
달라진다.
저자가 제안하는 여러가지 중 '미의 이데아'라는 부분이 유독 마음을 끌었다. 사람마다 감성이 다르기에
아름다움의 기준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진(眞), 선(善), 미(美)란 고대 그리스부터 인간이 이상으로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인데 이 가운데 '미'란 '어떻게 살아야 한다'나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
옳바른 삶이다'라는 '선'처럼 윤리적인 것과는 달리 좀 더 근본적인 에너지를 나타낸다. 내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이제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다. 겉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그래도 최소한 스스로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의 내적 아름다움을 알아주기를
기다리다가는 기차는 떠나 버린다. 화려한 명품으로 겉 모습을 치장하라는 말이 아니다. 정갈한 옷차림과
경솔하지 않은 행동 그리고 겸손한 말을 하라는 것이다. 하늘의 뜻 뿐만 아니라 주변의 뜻과 생각에도
신경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저자의 맺는 말의 제목은 '이제 자존심, 꿈, 사람을 버리고 오직 나를 위해서만'이다. 50세가 넘으면
서서히 혼자 있을 시간이 많아진다. 이 말은 혼자있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그 시간이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재미없는 시간이 되고 무언가 몰입(flow)할 수 있는 꺼리가 있으면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된다는 말이다. 몸에 힘이 빠지고 의식이 균형있게 질서 잡힌 상태를 몰입이라고 하는데 일을
몰입 할 수 있는 활동으로 바꾸면 노는 것처럼 생활이 즐거워진다.
버릴것은 과감히 버리고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후반전 준비는 아직 그 시간이 되기 전에 시작해야 하며
행복한 50세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 되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 할 때가 가장 좋은 시작
시간이라는 말처럼 지금부터라도 후반전을 위한 준비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