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않고 원하는 것이 잘 되지 않아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마사야에게 전해진 한 장의 편지에서
출발한다. '한니발 렉터'를 연상시키는 연쇄살인범, 어릴적 유난히 자신에게 잘 해 주었던 인심 좋은
빵집 주인. 어쩌면 마사야는 둘의 심리적 간극에서 고민을 거듭했을것 같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을
믿는 사람의 습성은 더더욱 자신이 믿는 것을 신뢰하게 만든다.
24명이나 사람을 죽여 사형을 기다리는 연쇄살인범은 왜 마지막 죽음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의 범행이
아님을 주장하며 누명을 벗길 원하는 걸까? 굳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입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책의 내용 중 '양파를 얇게, 더 얇게 썬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소설의 내용이 그렇다. 읽어 가면
갈 수록 점점 더 미궁이고, 연쇄살인범의 삶을 파헤칠수록 그의 인생에 빠져든다. 마치 그럴수밖에
없었음을 대변이라도 해 줘야 할것 같은 마력을 가진다.
인생은 늘 그랬던 것 같다. 언제나 '여기 아닌 어딘가'를 바라며 늘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는다.
연쇄살인범 하이무라처럼 말이다. 그래서 조금 더 높은 곳, 조금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적절한
거짓을 말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늘 감추고 그외의 것을 말하기는 하는데 하이무라는 여기에 대해
'거짓을 말할 때는 9할 정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한다. '절반의 거짓'이라는 법칙을 믿고
있던 내게 만약 '9할의 진실'을 들이댄다면 난 분명 속아 넘어갈 것이다.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어떠한 환경에서 성장하는가는 성장기 인격형성에
중요한 요인이 되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느냐는 행동양식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그런의미에서
하이무라의 환경은 그를 충분히 삐뚤어지게 만들 요건이 된다. 자살을 경험한 후 걷잡을 수 없이
난폭해진 양아버지에 명망있는 정치가의 딸이지만 떳떳하게 내놓을 수 없는 지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정상이 아닌 어머니, 4명의 형제 중 자신을 제외한 다른 형제는 영양실조와 교통사고로 어린나이에
죽어 버린, 그래서인가 애정결핍인 그의 어린 시절의 범행은 잔혹하다.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를
납치해서 벌인 범행행각이나 남자 초등학생을 납치해서 벌인 범행은 만일 그가 옆에 있었으면
죽여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잔혹하다. 그는 그 후 전과 15범이 된다.
결국 모든것이 어이없는 헤프닝(?)으로 마무리되고 일상으로 돌아온 마사야는 초등학생때부터 함께
걷고 싶어 하던 아카리와 햇살 좋은 날을 맞이하고 있고, 같은 시각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하는 주임 변호사 시무라와 마주한 하이무라는 이렇게 말을 한다.
'.....지금,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죠'
사람에겐 누구나 '일탈'의 본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다만 그 본성을 드러내느냐 감추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하이무라의 '유희'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한채
읽어 내려갈 정도로 이 책 흥미롭다.
과연 살인은 전염병 처럼 퍼져나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