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명가의 8번째 책을 읽는다.
항상 기대 이상의 만족을 주었기에 이번에도 충만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첫 장을 열며 한국 정치의
민낯을 접한다. 대한민국의 공식 정부는 수천년의 왕정을 거친 후 형성되는데 3.1 만세운동 직후
1919년 4월 11일에 중국 상해에서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그 시작으로 본다.
이 책은 친절하다. 핵심 키워드를 전면에 배치하여 혹여 모를 시간대의 혼선과 혼동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그 첫번째 키워드가 지금은 말도 안되지만 그때는 그냥 그렇게 용인하고 넘어간 '사사오입'개헌이다.
대통령의 3선을 만들어 내려는 자유당이 의결 정족수에 1표 모자라서 부결된 안건을 전대미문의
'반올림'으로 통과 시킨것을 말하는데 이를 통해 민심을 잃게되고 4번째 집권을 위해 벌인 3.15 부정선거는
4.19를 촉발시켰고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박정희의 쿠데타에 이은 장기집권으로 민주주의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이는 또 다른 쿠데타에 의한
군부집단의 집권에 빌미를 제공하였고 이후 군부 독재 세력에 의해 자행되었던 수많은 사건과 아픔은
아직까지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자리하고 있다. 노태우의 6.29선언을 필두로 군부 독재는 종말을
고하지만 사실 그 이후에도 절대 권력에 의한 불법과 비리는 그 종류와 모양만 다를 뿐 여전히
자행되었다.
격변하는 정치 상황에는 항상 '시그널'이 존재한다. 한국 정치를 이야기하는 저자는 '선거'를 격변을
예고하는 시그널로 본다. 이승만을 하야시킨 4.19를 비롯하여 군부의 종말을 고하는 1987년 민주화운동
역시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한국 정치사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대한
권력의 왜곡, 그리고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의 역사였다고 할만큼 치열했고 처절했다.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선거가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우리나라 첫 선거는 1948년 5월 10일 치러진
총선거이며 이때 선거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4.19혁명이나 6월항쟁은 모두 선거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건들이고
민주화와 함께 민주주의가 복원되었고 이제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덕분에 이제 누구도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이외의 방법으로 권력을 취할수 없게 되었고 여야간의 정권 교체도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이제는 절차적 민주주의 확립이라는 소극적 목표를 넘어 개방적이고 공정한
대표성의 확립, 정치적 표현과 선거운동의 자유, 비례성의 확보등 민주적 가치가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 정치를 개혁해 나가야 할 때이다.
저자는 권위적 모습이 줄어들게 되고, 전문성을 가지게 되며, 다양성을 취하게 되고, 사회 약자들의
정치 참여를 높일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는 이견이
분명 존재하나 대의적 차원에서 찬성한다. 단 조건이 있다. 철저한 검증을 거쳐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할 수 있는 시민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아이들 반장 선거도 정책과 신뢰성과 전문성을
보는데 국민을 대표하는 이를 뽑는 선거에서 '아무개 당 간판 만 달고 나오면 무조건 이긴다'느니
'어디 출신이면 무조건 이긴다'와 같은 저급한 패거리 문화는 더 이상 안 보았으면 좋겠다.
일상에서 만나는 정치는 너무 시끄럽고 혼란스럽고 조악하다. 국민을 대표하는 이들의 모임이 아닌
철없는 아이들의 패거리 모임 같다. 성숙하지 못하고 책임감 없이 벌이는 경솔한 행동들은 국민들의
근심거리가 된지 오래다. 언제부터 외쳤던 '지역주의 타파'인데 지역성은 여전하다 못해 더 견고해졌고
정책과 아이디어를 다뤄야 할 장이 이합집산의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더이상 국민들이 그들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고 어이없어 하는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저자는 '변화의 정치'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가진다. 지금껏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고
걸어 왔던 길 보다는 걸어갈 길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국가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
시민의 역할이 강조돼서 중요한 시대이다. 국가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시민이 감당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 범위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즈음에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취임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친애하는 미국 시민 여러분. 국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수 있을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물어 보십시오.'
이 책은 우리나라의 혼란스러웠던 정치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다. 대통령,
선거, 정당, 민주화라는 4가지 키워드를 시간대 별로 기술하기에 더욱 읽기 편하다. 내심 이런 강의를
직접 들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