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말하다 - 이규현 목사의 목회론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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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성건성하는 목회는 안됩니다. P44

그리스도께 집중하십시오.  P38


책을 접하며 겁이 났다. 나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그러면서

편으론 '다시 일어섬' 떠올랐다. 다시 일어섬은 기대를 갖게 한다. 회복이며 앞으로 나아감이며

간절함을 가지기에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기대하게 된다. 그런 기대감으로 책을 대한다. 


목회자는 복음 장사꾼이 아니라 진리를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어야 한다.'

책의 뒷면에 나오는 글귀에 한참을 책장을 넘기고 멍하게 있었다. '복음 장사꾼', '진리를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 나는 어디에 속하는 사람일까. 알량한 지식 복음을 무기로 주님이 내어쫓는

자리에서 성도들을 착취하며 등골이나 먹는 파렴치한 목회자인가 아니면 자신의 등골마저

내주면서도 기쁨으로 길을 걸어가는 치열한 목회자인가 잠시 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 


목회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무슨 재주를 피운다고 해서 되는 일이 결코 아니다. 목회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여기까지가 전형적인 목회론이다. 목회자들은 누구나 부흥을 꿈꾸며 기대한다.

하지만 부흥은 쉽지 않다. 애둘러 영적 부흥을 말하지만 이건 어렵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버티기

싸움을 하는 중이고 사실 이마저도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한국 교회를 지탱해온 목회론이

뿌리채 흔들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목사스러움' 아닌 '목사다움' 관건이다.

목사가 목사여야 하는데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고 때론 성도들 보다도 못한 때가 많다. 이런 위기 속에

목회자는 점점 고립되고 결국 선로를 이탈한다. 그냥 목사면 목사다우면 되는데 꾸미고 변장하고

포장하느라 정작 자신의 신분 마저 망각해 버리는 때가 너무 많다. 


부터 강력하다. 모두가 주인공이길 원하는 시대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선포한다.

고백을 진심으로 있다면 적어도 가능성은 살아 있는 것인데 진심과 진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고백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고 주인공을

드러나게 하는 존재이다. 주인공이 주님이시기에 우리는 오직 주님만 드러내면 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주인공은 한명이면 족하기에 내가 드러나면 순간 주인공은 죽게 된다. 다시 말해 목회,

교회가 드러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죽는다. 성공 일변도의 목회를 지향해온 우리에게 말은

사형선고와도 같다. 그러나 죽어야 산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죽어야 그리스도가 영광되게 사시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고백한 '그는 흥하여야겠고'(3:30) 정답이다. 안에 십자가의 도가 있고

들러리 영성이 있다. 

성장에 빠져 방법론의 귀재는 되었을지 몰라도 신학이 없기에 소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제대로 듣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점점 말씀을 대하는 시간이 줄어 든다.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는것 만큼,

자신의 몸을 단련하기 위해 하루도 빼먹지 않는 운동 만큼, 의미 없이 웃고 떠들며 보내는 황당한

교제 시간 만큼만 말씀을 가까이 해도 말씀의 질이 바뀔것인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 바쁘다.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 '천천히, 천천히 성경을 읽으세요'라는 말이 떠오른다. 

"뭣이 중헌디"

사역한다면 현장에 있어야 한다. 말로만 때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고 움직여야 한다. 의미없이

'기도해 드릴게요' 아니라 죽을 힘을 다해 기도해야 한다. 교인들의 삶에 조금 깊이 들어가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안주하고 만족하지 말고 깊은 곳에 들어가 그들의 내면을 보아야 한다.

알량한 심리학이나 상담학의 학문적 접근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읽고 위로하고 감싸주어야 한다.

속에서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주님만 붙잡고 의연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앞에 겸손해질수 밖에 없다. 경쟁하고 의식하고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열심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야 한다. 


'십자가를 지켜라'

십자가를 잃어 버리면 보상과 격려를 바라게 된다. 십자가는 ' 내어줌' 상징인데 십자가를

버리면 자기것과 내것을 찾게 마련이다. 십자가로 돌아가면 안전한데 무겁다고 거추장스럽고

힘들다고 자꾸 십자가를 벗고 세상을 활보한다. 세상과의 전투에 필요한 갑주를 모두 벗고 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니 밖에 없다. 이미 주님이 이겨 놓으신 전쟁에 나가서 맨날 패배만 맛보니 삶은

힘들고 우울하다. 십자가를 잃어 버리면 모든 사역이 일이 된다.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헌신이

아니라 받고 하는 일이 되다보니 건성건성 대충대충이다. 건성건성해서는 아무것도 없다.

복음의 변화 앞에서 목회자가 먼저 서야 한다. 그래야 십자가로 돌아갈 있다. 


예전에는 엉덩이가 공부를 했다. 그래서인지 책상에 오래앉아 있던 대부분이 공부를 잘했다. 책에서

오랜만에 말을 만난다. '목회는 엉덩이로 합니다' 설교를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목회자들의 노력에

대해 이야기 한다. 완성된 설교를 위해 얼마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으며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가에

대해 말하며 '굉장히, 오랫동안' 강조한다. 홀로 준비하는 고독을 받아 들여야하며 고독을 즐겨야

한다. 설교는 쉽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영적 고통과 고민과 깊은 묵상을

통해 탄생되는 생명이다. 설교에 생명이 없으면 설교자는 자신을 잃게 되고 듣는 이는 감동을 받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에게도 자신이 없는 설교를 성도들에게 수는 없다.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이

묵상이고 기도고 연구다. 그러기 위해 목회자는 끊임 없이 공부해야 한다. 목양실 책장을 가득 채운

기선 제압용 전시가 아니라 한권 한권을 통해 얻어내는 귀중한 결실들을 설교로 연결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하며 성경이라는 마르지 않는 샘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물을 길어 올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엉덩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스스로의 임계점을

돌파하는 '영적 폭발' 필요하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음의 근육'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회자에게는 무엇보다 '영적 근육' 키워야 한다. 그래야 버틸 있고 견딜 있다. 


책은 나를 포함한 모든 목회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별히 영적 매너리즘이나 무기력에 빠진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 어깨를 짖누르는 계급장 떼고 처음 신학교 들어 갔을 때를 기억하며 진지하게 읽어

보면 좋을 같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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