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학문적 스펙트럼은 넓고 다양하다. 정신분석상담학자이면서도 자신의 수업은 철학,
사회학, 윤리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이외에도 물리학, 분자 생물학, 세포학, 면역학등의 기초적
개념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는 광오함에 '뭘 그렇게까지'라는 나의 생각은 이내 그래야
한다고 설득당한다. 이렇듯 현상적인 학문에 비중을 두는 이유는 우주의 현상과 우리 몸의 세포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다르지 않음에서 기인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인간의 사유와 존재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바라보고, 우리가 어디에 머물고, 걸어가고, 사라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적 힘을
키우기 위해 저술한다고 밝힌다. 이 책에는 39명의 물리학자, 철학자, 정신분석학자등이 등장하며
이들을 추적하여 흔적, 신호, 정보, 시선의 갈래를 통해 증명해 나간다.
시대 속에서 고민하며 번민하는 그들의 삶은 정보적 신호로 남아 지식으로 우리에게 전달 된다.
신호란 각 시대를 변화시킬만한 의미와 기호라 할 수 있다. 광대한 우주 속 우리는 하나의 점도
되지 않는 무의미한 존재이면서 유일한 하나로서 가치를 가지는 유의미한 존재들이다. 물론 아직
우리는 무지하고,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존재이다. 그래서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름답고 모든것이
가능한 존재이다.
'삶은 쉼표, 느낌표, 의문표 사이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그렇다. 삶은 순간이라는 점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점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죽음 이후에도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살아 존재하기에 우리는 '지금'을 잘 살아내야 한다. 버겁다고 포기하지 말고,
힘들다고 돌아서지 말며 당당히 세상앞에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 속에 시선을
맞추며 산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존재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보다 더 나은 존재이다.
그를 통해 더 성숙해지고 현명해질 기회를 갖게 되어 진리에 다가 설수 있다. 진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초월해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진리를 찾고 있다.
상상의 간증은 실제를 억압하는 유일한 독재자의 모습이라 말하는 저자는 '있다'는 존재와 '없다'는
사유의 구획이 없는 그곳은 새로운 맑은 바람이 머무는 영원한 안식처라고 말한다. 그곳에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가 머문 흔적이 남아 있다. 그곳은 태고의 순결함과 정직함이 깃든 곳이며 거역할 수
없는 진리가 숨쉬는 공간이다.
'우리는 불완전하기에 모든것이 가능하다.'
불완전은 완전으로 나아갈 가능성이다. 비록 개념은 석양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지만 불완전한
우리는 그 석양의 아름다움에 빠져 잠시라도 시간을 멈춰서 그것을 누린다. 그러나 이내 그 석양은
또 다른 불완전함을 채우려 사라진다. 텅빈 어둠의 본질을 깨닫는 불완전한 우리는 또 다시 개념의
노예가 되어 완전함으로 치닫는다.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구멍난 냄비 같은 우리를 위해 그대로 흘러 내린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Werner Heisenberg,
1901-1976)에 의해 등장한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우리의 삶은 어느것 하나 정해진 것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는 것이다. 가로등빛 사이를 걸어가는 사람이 가로등 불빛
아래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음번 가로등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전자의 역동성'에
대해 깨달은것 처럼 우리는 불확정함 속에서 확정된 무언가를 끊임없이 발견해 나가는 존재들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 속에 입자와 광자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지 않는다. 다만 사물이
어떻게 나타나고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만 기술한다. 이처럼 삶은 우리에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다른것에게 드러내는지를 말하는 존재다. 모든 삶속에 존재하는 결여와
소외는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물음은 소외와 결여의
빈공간으로 향한다.
이 책 어렵다. 정말 억지로 겨우겨우 읽었다. 지적 자유의 충만함이 최고조에 달한 듯 쏟아 내는 언어의
유희와 지식의 분출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이 책은 몇 번이고 더 읽어 볼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흔적은 상상을 낳고, 신호는 의미를 낳아 우리의 존재를 성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