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통해 사주가 태어난 년, 월, 일, 시의 네 기둥을 부르는 말이고 위에 네 글자 아래의
네 글자를 합쳐 팔자라고 하며 일주일의 일, 월은 음양을 화수목금토는 오행을 지칭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정확하게 읽게 되었다.
저자는 사주를 풍경화에 비유한다. 사람들이 태어난 달과 시간을 연결시켜 한 폭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어느것 하나 같은 것이 없고 모두 제각각 자신의 풍경을 가지고 있다. 또 어떤
그림은 이미 완성된 것도 있고, 어떤 그림은 열심히 채색 중인 것도 있고, 어떤 그림은 스케치만
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어느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 똑 같은 그림이 없기에 다른
그림을 기웃거리고 비교할 필요도 없이 자기가 주인공인 그림을 그리면 된다. 좋고 나쁜
사주는 없다.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뿐이다.
사주를 본다는 것은 '운명지도'를 해석하는 행위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는 섯불리 해서도 안되고,
대충해서도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운명지도를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운명에 대해 알고 이야기해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미 태어난 운명은 바꿀 수 없지만
자신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액운을 피하거나 피해를 줄이거나 어느정도 대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주 팔자를 해석하는 체계 안에 몸의 오장육부를 배치하였기에 음양과 오행의 관계가 사람들의
선천적인 건강 상태를 나타내며 木은 간과 담의 신경계, 火는 심장과 소장의 순환계, 土는 위장과
비장의 소화계, 金은 폐와 대장의 호흡기계, 水는 신장과 방광. 생식기의 비뇨기계에 해당하며
사주팔자를 통해 이를 어느정도 알 수 있다는 사실엔 조금 놀라기도 했다. 사람은 선천적 모든
기억을 몸에 가지고 태어나기에 자신의 몸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의 마지막 말 중 '비탈지지 않은 평지는 없다'는 말이 눈에 들어 온다. 멀리서 보면 평지처럼
보여도 가까이 가보면 언덕도 있고 비탈도 있는 법이다. 겉으로 보기에 평온하고 행복해 보여도
정작 그 속엔 갖가지 근심 걱정 거리가 넘쳐나고 힘들고 어렵지 않은 인생은 없는 법이다. 저자도
말했듯이 사주가 모든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선택의
폭을 좁힐 수 있고 조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어짜피 살아내야 하는 인생이라면 남과 비교하며 걱정 근심 가득한 삶을 살기 보다는 자신을 믿고
자신의 풍경화 속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사는 편이 훨씬 좋지 않을까. 자신이 바라는 일이 지금 바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열매를 위해 씨를 뿌렸다면 그것을 기다리며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삶이 운명을 개척하는 승리자의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