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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여자들
설재인 지음 / 카멜북스 / 2019년 7월
평점 :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몸은 축축 늘어지고, 의식은 몽롱하고, 눈에 힘은
점점 풀리고, 그런데 잠은 오지 않는. 저자의 글이 그렇다. 강렬한 임팩트는 없지만 그 잔잔함이
멈추지 않고 흐르며 잔파문을 일으키는데 그 넘실거림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청소년의 시선에서, 성인의 시선에서 그리고 방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그녀의 주변은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모습들이다. 몇가지를 제외하면(대부분
이 몇가지는 드러내지 않을 뿐 누구나 가지고 있다). 엄마의 유언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시대를
거슬러 오르기도하고 뛰어 넘기도 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동원하기도 하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타 소설들이 그렇듯 하나씩 밝혀지는 사연들은 또다른 이야기가 되고 자극이 되어 기대감을 상
승시킨다.
사랑은 그런것 같다. 자신의 마지막을 맡길 수 있는 마음, 서로의 모습이 어떠해도 한결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게 사랑인것 같다. 자신의 유골을 혜순 아줌마에게 전해달라고 한 엄마의
유언에는 사랑이 담겨있다. 마지막이 아닌 영원을 향한 간절함을 담은 사랑 그 사랑을 담은 유골함이
전달 되자 또 다른 사랑은 숨이 막히고 가슴이 아려 온다. 이런게 사랑이다.
하나의 사랑이 더 있다. 자신의 어깨를 툭툭치며 던진 '죄송합니다'에 반하고, 지리를 잘 몰라 해맬것
같아 던진 '관찮으시겠어요'에 반하고, 2차에도 '술'을 말하는데 반해 두 사람은 결국 결혼까지 골인한다.
그런데 그 남자는 어이없게도 미로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말하기를 마치고 숨이 멎어버린다. 그 흔한
'사랑해' 한 마디 없이. 그래서 더 절절하다.
삶은 늘 혼자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도 결국 혼자다. 저자도 그랬다. 결국 혼자였고
여전히 혼자고 앞으로도 혼자이다. 다만 그 혼자있는 나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을 뿐
우리는 이 책에 등장하는 여자들처럼 여전히 혼자다. 그녀가 직장에서 혼자였듯, 집에서 혼자였듯,
공연장 그 열광 속에서 혼자였듯, 그리고 학교의 현장 속에서 혼자였듯 철저히 혼자다. 우리는 그렇게
혼자 살아가며 결국 살아내는 것이다. 저자가 "어쨌든, 살아남아 서른이 된것' 처럼 우리도 살아남아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지하철 내선순환과 외선순환의 차이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