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게 겨우겨우 살아가다가 누군가에게 '당신은 제대로 살고 있는 겁니다'란 소릴 들으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힘을 얻지만 금새 다시 지쳐버리는 우리에게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을 느낀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의 제목부터 신선하다. 1장 '느리게, 그러나 차곡차곡', 2장
'내가, 사랑한', 3장 '너의 목소리를 들어라', 4장 '무적, 소리를 따라'. 마치 한 편의 단편
소설들의 제목과도 같은 각 장의 이름들이 그냥 좋다. KBS 클래식 FM <김미숙의 가정음악>의
한 꼭지인 '시간이 담고 있는 것들'에서 그녀의 차분하면서도 편안한 목소리로 읽어 줬던 내용들을
추려서 옮겨 놓은 책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겪는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살아가는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나와 닮은
누군가를 만나 위안을 삼기도 하며, 하나가되어 같이 아파하고 같이 웃었던 그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정겹고 반갑다. 삶은 그런것 같다. 특별히 잘날것도 그렇다고 특별히 못날것도 없이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이루어가는것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다.
지하도나 육교가 언젠가 한번은 올라가고 한번은 내려와야 하듯 인생도 정확하게 비기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어제가 고통스러웠다면 내일은 반드시 행복할 수 있어서 아무리 힘들고
절망스러워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고, 아무리 많은 행운이 몰려와도 겸손할 수 있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어 보지만 여전히 삶은 불공평하고 불편한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 앞에 우리는
12월만을 위한 달력에 달린 작은 봉지 하나하나를 열어보며 언젠가 올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듯 각자의
삶에도 그런 날이 오길 기다리며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가 매 달 있으면 어떨까?
'나는 감정적인 사람입니다'를 쓴 심리치료사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삶을 자동차에 비유한다. 기쁨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엔진이고, 분노는 침체된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강력한 가속 페달이고, 슬픔은
주행 모드를 바꾸게 해주는 클러치고, 두려움은 안전을 위한 브레이크 페달이다. 삶이 늘 행복할 수
만은 없다. 기쁨과 행복만이 아니라 분노와 슬픔과 두려움까지 골고루 찾아오고 때론 몰아 닥친다.
관건은 얼마나 적절히 그것들을 넘어가느냐에 있다.
소소한 일상은 늘 정겹고 반갑다. 일 년에 한두번씩 가족중 아무도 먹지 않는 자두를 어릴 때 마음껏
먹지 못한 것이 아쉬워 오직 혼자 먹기 위해 박스 채 구매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유독 복숭아, 그것도
아삭아삭한 복숭아가 아니라 물렁물렁한 그것을 벅스 채 사셔서 하나씩 꺼내 드시던 어머니가 생
각났다. 10남매에 8번째섰던 어머니는 항상 조금 더 먹고 싶었지만 아래 위로 치여서 마음껏 드시지
못했던 복숭아를 어른이 되면 꼭 박스채 사서 마음껏 드시리라는 생각을 하신 후 정말 그렇게 일년에
한 두번씩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드셨다. 가족들 모두 손도 대지 않던 물펑 복숭아를.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많은 것을 묻는다. 그 삶의 어딘가에 분명 서 있을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최선의 아니라 잠시 멈춰서서 주위를 둘러 보며 세상과 호흡하고 잠간 숨고르기도
하며 살라고 인어공주에게 제안한 300년의 바람같이 슬며시 다가와 옷깃을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