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독일은 산업혁명과 함께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산업혁명의
토대가 된 자연과학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철학과 문학, 예술, 종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도전에 직면했으며 당시 가졌던 대부분의 전통적 관념들이 뿌리채 흔들리게 된다.
'아름다움과 추함'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미학'
수세기 동안 독일인들에게 삶의 목적과 의미를 설명해주고 규정해 주던 기독교라는 토대가
흔들리며 시작된 시대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젊은 지식인들의 사고의 변화는 자연과학적
사고체계와 유물론적이고 생물학적인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종교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체계와 세계관, 인간관을 찾게 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문학을 모색하던 작가들은 자신들의 삶과 사고를 올바로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문학 형태를 만들어 냈는데 이를 '자연주의'라 부른다. 이들을 한 마디로 단정지을수는
없지만 '거짓'을 말하는 문학을 신랄한 어조로 공격하며 '진실'을 말하고 쓸 것을 주장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 시장의 상업화를 통해
오히려 지명도가 떨어지는 젊은 작가 층들의 수입은 더욱 감소했고 이에 반해 신진 작가들의
수는 급증하게 되어 또 다른 무한경쟁을 유발하게 된다.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작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적, 문학적 신념에 반하는 활동을 통해 돈을
벌 수 밖에 없었다. 문학잡지나 통속잡지의 편집자로 일하거나 이런 기회조차 잡지 못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가족잡지에 실릴 통속적인 글을 쓰거나, 신문에 연재할 기회를 잡기 위해 신문사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지적 성찰 없이 글을 팔아 먹는다고 비판하던 신문기자들처럼 깊이 없는
보도성 기사를 써서 신문사에 팔아 생계를 꾸려야 했다. 이에 자연주의 이전의 문예사조인
독일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작가인 테오도르 폰타네는 이렇게 경제적 문학적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젊은 작가들을 일컬어 '잉크노예'라고 표현했다. 콘라르 알베르토는 '그
자체로서의 추한 것, 더러운 것, 천박한 것, 비 예술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자연 속의 모든 것이 다 기본적으로 예술적 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절대적인 아름다움'
대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미적 판단 기준이 되면서 질병, 가난, 매춘, 알콜중독, 근친상간,
도덕적 문란 등 전통적으로 문학 작품에서 다룰 수 없거나 최소한 중요하게 다룰 수 없었던 것들이
빠르게 문학의 핵심 주제로 자리잡게 된다.
이로인해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자연주의자들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던
소재는 철저하게 배격되고 오로지 추한것들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들 스스로도 추한 것 역시
진실의 일부라는것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예를들면 카를 헨켈의 시 '창녀'에 등장하는 시적 자아인
창녀는 깊은 지탄 속에 순수했던 어린시절부터 떠올리며 자신도 다른이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대한 즐거운 회상은 현실의 비참함을 더욱
강조해 줄 뿐이다. 이 시의 파격은 사회 최하층민이자 윤리적으로도 가장 저급한 삶을 살아가는
창녀를 시적 자아로 삼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이러한 소재 선택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통속문학은 물론, '문학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윤리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어 독자를 고귀한 삶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고전주의적 이상주의 문학의 구상과도 극
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독일어로 예술은 '쿤스트(Kunst)'이며 이는 본래(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의해
만들어 지는것'을 의미한다. 예술은 자연의 개입 없이 인간에 의해 창조된 순수하게 인공적인
문명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오랜만에 헤르만 바르(Hermann Bahr 1863-1934)의 '구원할 길 없는 자아'를 만났다. 학부 때
본 내용이니 벌써 수십년이 지났지만 '자아는 구원 할 길이 없다. 자아는 그저 이름 뿐이다'라는
글귀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강력한 도전이다. 자아는 단지 현상일 뿐이며 우리가 우리의
심상을 정리하기 위해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임시방편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가변성은 어떠한
변화가 또 다른 변화에서 멀어지는 것이지 영원하지는 않다. 이제 이성은 우리를 파괴하려고
위협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요소가 진실이 아니라 환상일 뿐임을 인식하게 된다.
나에게 유효한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해는 여전히
떠오르고, 대지는 진짜이며, 나는 나다. 아마도 이때부터 내가 쓰는 글에 '여전히'라는 단어를 사
용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전히 그의 글에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 책은 쉽지 않다. 방대한 분량뿐 아니라 역사와 사회,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광대한 지적
충만함과 예술과 문학이라는 고차원적 학문이 결합되어 문장의 향연을 벌인다. 깜빡 정신을
놓으면 맥을 붙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진행과 도처에서 튀어 나오는 은유와 비유는 아차하면
다른길로 빠지기 일쑤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어 볼 만 하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독일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연구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것 같다. 다수의 텍스트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거나 연구되지 않은 다수의 작품과 주제들은 충분한 학문적 가치를 가진다.
비록 마음 편히 쉽게 읽을 인문 교양서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메모를 하며
정리해 나가다 보면 그때 그들의 마음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