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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 서울.평양 그리고 속초.원산
JTBC <두 도시 이야기>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9년 6월
평점 :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걸어가지만 앞으로는 같은 방향을 보고 걸어가야 할 그 DNA의
본능과 미각을 찾아 떠나는 여행,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제목이 낯이 익다. 찬스 디킨스가 18세기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쓴 '두 도시
이야기'와 같은 제목이다. 이 책 역시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걸어 온 두 도시의 속 깊은
사정을 이야기 한다. 저자도 밝혔듯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을 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이 책이 그래서 더욱 반갑다.
평양하면 냉면이 떠오른다. 그런데 저자는 냉면이 아닌 '대동강 숭어국'을 먼저 소개한다.
듣기만 해도 '시원한 국물'이 제 맛인 맑은 탕이 생각나는데 된장과 고추장을 섞은
매운탕이다. 예전만해도 비린내를 잡기 위해 통후추와 고추를 듬뿍 넣어 담백하게 끓이던 것이
점차 추세가 매콤하고 자극적인 쪽으로 흐르고 있다하니 입맛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것 같다.
통영에서 먹은 '도다리 쑥국'이 생각난다. 맑으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그 맛을 잊지 못해 매년
통영을 찾는다는 지인처럼 지역 특색화 된 '대동강 숭어국'의 맑은 맛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매운탕으로 변했나 보다. 그럼 이제 '대동강 숭어탕'이라고 불러야 하는건가.
'어을매'라는 순 우리말 이름을 가진 작은 어촌 마을, '멀 원'에 '산 산'을 써서 원산(遠山)이라
부르다 삼봉산을 축으로해서 마늘 대가리처럼 생겼기에 '으뜸 원'자를 사용하는 원산(元山)이
된 도시, 만해 한용운의 기행수필 '명사십리'에 등장하는 일제 강점기 한반도 유일의 관광도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하나인 윤동주가 송림 숲이 좋은 송도원에서 바라다 본 바다의
모습을 담은 시 '바다'의 소재가 되기도 한 그곳이 원산이다.
원산에서 처음 소개하는 음식이 원산 앞바다에서 나는 문어, 조개류와 다양한 채소를 무친
'원산잡채'이다. 해산물과 채소를 채 썰어 넣은 이 음식의 북한식 이름은 '해물 분탕'이다. 동해가
주는 선물인 문어, 소라, 전복, 조개등의 싱싱한 해산물을 채 썰고, 오이와 채소를 큼지막하게
잘라 놓고 이를 잘 익힌 후 당면과 함께 무쳐 먹는 이 음식은 낯설다. 우리가 아는 '잡채'가
여러가지를 섞는다는 '잡'과 채소의 '채'로 당면이 들어가지 않고 채소 혹은 나물을 섞어 만든
음식이며 지역마다 특색있는 재료들을 넣어서 만든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간을 세지
않게 하고 당면을 '무친다'고 해서 원산잡채라고 부른다는 이 음식의 화룡점정은 '배'이다. 단맛을
내는 용도로 채 썰어 넣는 배는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을 넣음으로 음식 자체가 아주 디테일하고
그 맛이 정교해진다.
속초 64km. 원산에서 보는 표지판이다. 불과 64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함경도에서 피난나온
사람들이 정착하여 도시를 형성했고 지금은 해돋이와 설악산으로 유명한 관광도시 속초가 있다.
그래서 이곳에선 함경도 말투가 익숙하다. 한 때는 전체 인구의 70%가 실향민이기도 했던 이곳에는
'일주일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자'라는 마음으로 떠나 온지 70년이 된 실향민들이 속초 시내와
속초 수로를 인접해서 마을을 형성했고 이곳이 지금은 '아바이 마을'이라고 불린다. 당시 시내로
나가는 유일한 교통 수단이었던 '갯배'가 속초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이 된 이곳의 대표 음식이
'아바이 순대'이다. 돼지고기, 선지, 배추, 시래기, 부추, 당근, 양파, 파에 마늘, 생강, 완두콩, 찹쌀과
맵쌀을 7:3으로 섞은 쌀 등을 곱창에 집어 넣어 쪄내면 함경도 지방에서 특별한 날에만 먹는 특식인
아바이 순대가 완성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정통방식으로만 만드는 집이 점점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외에도 오징어 순대, 명태 순대, 서울식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속초식 함흥냉면 등이 있다.
속초식 함흥냉면은 투박하다. 양파에 파를 많이 넣으며 그 맛은 서울보다 덜 달고 더 맵다. 또한
포만감을 주기 위해 육수를 많이 넣어서 양념장과 잘 섞어 해장 대용으로도 먹기도 한다. 육수가
없는 비빔냉면이라고 생각하는 서울식 함흥냉면과는 분명 차이가 크다.
서울과 평양, 원산과 속초를 통해 다른 방향을 보고 걸어온 우리의 시간의 단절을 살펴보고 앞으로
같은 방향을 보며 함께 걸어 갈 미래를 꿈꿔 보는 이 책은 한 편의 여행기이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이 책을 들고 기록된 장소들을 찾아가 그 맛을 느껴보고 싶다.기왕이면 비슷한 맛을 내는 이곳의
음식들을 가져가 비교해 보며 말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마음을 연다면 마냥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도 그만큼 가까워 질 것이다. 가깝고도 먼 곳이 아닌 바로 옆에 있는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