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을 갖고 싶었다
김지우 지음 / 홍익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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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이름을 갖는다.  어떤 이에게는 명예가 수도 있고, 어떤이에게는

수치가 수도 있지만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갖는다. 그런데 사람은 이름과는

다른 이름을 갖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내다 던진다. 저자도 그랬다. 선생님 보다는

작가님이 간절해 지고 애둘러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라는 말로 위안을

삼지만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여전히 어딘가 미진하다. 직업이 사람의 품격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데 우리는 어느새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아쉽게도

직업에 걸맞는 품격을 지닌 사람은 많지 않은데도 말이다. 


저자의 글은 편하다.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해 익숙하다. 읽다보면 어느새 내가

그가 되어 한강변을 달리기도 하고, 생전 처음 미역국을 끓이며 좌충우돌하기도 하고,

140 버스에 타서 인생의 짐을 팔아 버리기도 하고, 국가고시의 무리에 앉아 매년

만나는 이들의 품평회를 하기도 한다. 


역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작자의 무한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짊어지기 힘든 잠이라는 아이를 등장시키는 생각은 독특하다. 잠을 팔아 넘기고

받은 두툼한 무게의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아는 카페가

한남대교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는데 아마 저자도 그곳을 아는 같다. 수입도

안되는 시절부터 '시다모 빈티지' 어딘가에서 구해와 내놓고 환하게 웃는 그곳

주인장의 웃음도 그립다.

 

자신이 직접 겪은 국가고시의 현실은 암울하다. 저자의 표현대로 100명만 뽑는데

수만명이 몰려들어 그야말로 전쟁통이다. 몇년 보다 보니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

온다. 예전 신림동이 그랬다. 서로 인사를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보던 얼굴들이다.

식당을 가도, 휴게실을 가도, 잘나가는 강사의 강의에 가도, 심지어 PC방에 가도

얼굴이 얼굴이다. 그러다 합격자 발표가 되면 소폭 물갈이가 된다. 극소수의

합격자와 소수의 포기자들과 이들을 채우는 또다른 도전자들로 그곳은 북적거렸다

 

'가보면 알게 될거야'라는 말이 눈에 들어 왔다. 앙코르와트를 찾았던 저자의 모습처럼

떠나 보아야 있는 것이 많다. 해보지 않고 먼저 겁을 내거나 두려워 한다면 결국

얻을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무언가를 얻기위해 싸웠고 싸웠으며  모든것은 승자의 전리품이 되었다. 앙코르와트에

가본 사람은 그곳의 거대함에 놀랄것이고, 거대함이 유기적인 모습으로 하나가 되어

움직임에 놀랄것이고, 그곳에서 보는 해의 뜨고 짐의 장관에 놀랄것이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손을' 적힌 글귀는 여전히 강하다.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다. 이것은 진리다.' 우리는 어쩌면 끝을 마치기 위해 존재하며 끝을 찾아

헤매는 존재들일 것이다. 끝은 영원하다. 시작이 무한대의 출발이라면 끝은 무한대

자체이다. 책은 그런 책이다.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고 안에 들어가 보자. 그러면  

언저리 어디쯤을 만나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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