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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 - 김대식의 로마 제국 특강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평점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여전히 고대 로마를 기억하며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분명 그들의 역사는 인류사 속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것 같다. 영원한
제국일것 같던 로마도 결국 망했다. 지중해를 마레 로스트룸(mare nostrum, 우리의 바다)이라고
부를 정도로 광오한 그들의 욕망은 그 자체로 이미 거대하지만 그 거대한 욕망도 역사 흐름
앞에는 나약할 뿐이다.
로마 이전에도 역사 속에는 이미 다양한 문명이 존재했고 그들 나름의 여력을 가졌지만 어느
문명도 로마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로마는 이들 문명을 모두 파괴하고 단일한 문명을 이룬 것이
아니라 과거 문명에 올라탐으로써 무한한 유산을 상속 받고 이로부터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명의 투쟁이 누가 더 키가 크냐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라면 다른 사람의 어깨위에 올라탄 사람을 이길 방법은 없다눈 말처럼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선 로마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저자는 문명 기원의 조건인 정착과 협업 그리고 언어를 들어 로마제국이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레반트(Levant)에서 찾는다. 레반트는 아프리카와 유라시안 반도 사이에 위치한
시나이 반도를 말하는데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길임과 동시에 나일강 델타와 메소포타미아 두 지역에서 가장 식물을 심기에 좋은 땅이다.
인류는 물이 풍족하고 흙이 비옥한 천혜의 환경 속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첫번째 문명이
등장한다. 5만년전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 진출한 호모 사피엔스는 1만년전 레반트에서
첫 문명을 이룩한 후 기원전 2000년 경 청동기 시대의 알라시아인 키프로스와 크레타로 진출한다.
지중해 문명의 중세기에 그리스인들은 전 지중해를 돌아다니며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역설적으로 그리스인들의 침략으로 지중해에는 찬란한 중세기가 도래한다. 그리스 문명을 나눌 때
페르시아 전쟁전의 아르카익, 페르시아 전쟁 후의 클래식 그리스, 알렉산드로스 황제 때의
헬레니즘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는데 이때의 조각들은 바로크 양식이라고 부를 정도로 과장되고
드라마틱한 표현이 특징이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박물관에 갔을 때 조각이 뻣뻣하고 죽어 있는것
같다면 페르시아 전쟁 전, 가장 최고의 작품성을 가졌다면 페르시아 전쟁 후, 조금 과하다고
느껴지면 대체로 헬레니즘일 경우가 많다고 알려준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내 것, 완벽하게 홀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다른것들과의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전통을 주장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생각이다. 문명의 이식은 어떤 시대,
어떤곳에서도 항상 똑같이 벌어져 왔고 홀로 존재하는 문명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문명이란 언제나 홀로 성장할 수 없기에 성장과 동시에 더 거대한 문명이 잠식당할 수 있는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결국 로마는 2-3세기에 이르러 전 유럽,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포괄하는 하나의
세상을 만들었다. 모든 인프라가 다 갖춰지고 그 어떤 적도 물리칠 수 있는 로마인의 평화,
로마 제국의 완성인 것이다. 그러나 이 광대한 영토가 멸망의 단초가 된다. 실제로 영국에서
이집트까지 가는데 6개월이 소요될 정도였으며 그러다보니 효과적인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너무 많은 국경선 역시 멸망으로 가는 배경이 된다.
멸망을 향한 전조는 로마를 대표하는 공화정에도 드리워지는데 공화정 말기에 세 가지 문제가
동시에 발생한다. 로마 안에서 벌어지는 불평등의 가속화, 로마와 이탈리아 사이의 차별문제,
노예들의 반란인데 이는 로마의 몰락을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 로마 멸망의 이유를 찾자면 19세기
독일의 어느 학자의 말처럼 게르만족, 경제의 쇠퇴, 전염병, 황제들의 문제등 모두 나열하면
100여가지가 넘는 원인이 도출되는데 이는 로마 멸망의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많은 역사학자들은 후계자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것과 극심한 빈부의 차이, 로마의
장점인 인프라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시스템의 붕괴를 들기도 하지만 이는 대표적인 이유
세 가지일뿐 절대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누구도 단언하지 못할 정도로 로마는 망해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메모하면서 보았는데 이곳에 그것들을
옮겨 본다. '수메르 왕국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는(Gilgamesh), 히브리인 이주 노동자들이
'노아의 방주' 스토리로 차용해 간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 기원전 1200-900년경 당시 세계화 된
문명 모두가 싸운 전쟁인 0차 세계대전(이 결과 당시 슈퍼 파워이던 아시리아, 히타이트가 멸망 함),
로마에 의해 멸망한 카르타고의 언어를 전혀 모르지만 그들이 털이 굉장히 많고 긴 사람을 지칭했던
'고릴라'라는 단어를 지금도 사용 하는 점,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선박용 걸이인 코르부스(Corvus),
로마 군을 전쟁에서 승리로 만든 질서의 산물인 방패 호플리트(hoplite)와 필룸(pilum)이라는 이름의
창, 화살 같은 모양의 풀름바타(plumbata),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 재현되있던 거북이 모양의 전술
테스투토(testudo), '신이 사람들 개인의 마음에 들어 왔다'고 말하는 유대인 철학자 모세 밴 마이몬,
콘솔(집정관)은 군대를 통치해서는 안되고 호위 군사도 9-12명으로 제한하며 두명을 1년 임기로
선출했고 집정관을 호위하는 군사들은 칼이나 창이 아니라 막대기를 묶어 위에 도끼를 끼운
파스케스(fasces)를 들고 다녔던 점, 라틴어로 묶음을 의미하는 파스케스는 막대기처럼 가는 것도
묶으면 튼튼해 진다는 의미로 로마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약하지만 이들이 모이면 강력한 군대가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파스케스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정치적 혼란을 틈타 다시 고대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며 무솔리니(Benito Mussolini)가 세운 파시즘의 상징이기도 함.' 이상의 것들은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공부해 볼 생각이다.
역사는 미래도 현재도 아닌 과거에 대한 이야기고 과거는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것들의 합집합이다.
기억 만으로는 아무것도 보존 되지 않기에 우리는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랑케(Leopad Von Ranke)는 '있었던 과거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역사는 진실을 말해야 하기에 승자에 편에선 진실이 아니라
객관적 시각으로 본 진실과, 허위와 조작이 가득한 사실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사실을
보야야 한다. 쉽지 않은 책이지만 읽고 있는 내내 뇌과학자의 시선으로 본 로마사와 고대근동지방의
전쟁사와 침략사등은 흥미진진했다. 한바탕 긴 시간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다.